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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Feb 19. 2023

길 위에서

하나의 길만 올곧게 펼쳐져 있을 줄 알았다.

하나의 길 위에

하나의 생각을 얹고

한 명의 사람과 

하나의 마음이 되어

한 발씩만 가도 되는 그런 길을 생각했다. 


길의 끝에 도달할 욕심에 마음 내주지 않고 

길의 끝에 있을지 모를 무언가에 사로잡히지 않고

심지어 길이 굽거나, 갈라지더라도

그저 발길 가는 대로 가면 되는 것이 길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가던 길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멈춰 서야 했을 때

홀로 가게 될 까마득한 앞이 두려워 

지나온 길만 뒤돌아 한참을 바라봤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아예 구덩이를 파고 드러누워 

길을 잃은 척, 길이 아닌 척,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몇 번의 계절이 돌았을 무렵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누운 구덩이에 흙이 소복이 쌓여

어느새 구덩이는 길이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끊어졌던 길은

그렇게 양손을 맞잡고 내 몸 위에서 하나가 되었다.


흙을 털고 다시 서게 된 길

지나온 길 역시 지나갈 길만큼이나 까마득했다.

여전히 망설여지는 발길

눈을 감고 선 나의 뺨 위로 한 줄기 미풍이 스쳤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문득, 미풍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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