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한 줄로 늘어선 겨울나무를 바라본다.
쩍쩍 갈라져 있는 메마른 그들의 거친 껍질의 고랑마다
그들을 지나쳤던 숱한 시간이 쌓여 있다.
나는 기억한다.
어린 잎을 매달고 봄바람을 맞이하던 그들의 야들거리는 촉촉함과
뜨거운 햇살을 버티며 터질듯한 생명력을 뿜어내던 여름날의 강인함,
온갖 색으로 몸을 휘감고도 뽐내지 않았던 그들의 겸손했던 가을과
비쩍 여윈 팔다리로 하늘을 이고 앉아 내색 않고 꾿꾿했던 그들의 겨울을.
봄이 살짝 섞여 들어온 해 질 녘 하늘에는
미처 내려앉지 못한 노을이 그늘져 있고
겨울과 봄 사이에는
여전히 몸을 닫고 있는 겨울나무가 서있다.
그가 몸을 열어 보이는 날
마침내 그에게서 봄이 쏟아질 것이다.
거친 껍질로 겨우내 품어 두었던
눈도 못 뜨는 아장거리는 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