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회사처럼 승무원도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내 동기 25명 중에서는 결혼하면서 그만둔 친구가 하나 있고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그만둔 친구가 있다. 이 둘을 제외하면 대부분 회사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공무원마냥 애를 낳아도 육아 휴직 2년 뒤에 칼같이 복직되는 회사라 출산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일반 회사에서는 승진이 누락되면 알아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마흔 넘어서도 사원 직급인 SS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뉴스 기사에는 승무원이 아주 힘든 직업이고 못 해먹을 직업으로 묘사된다. 내 자식은 절대 승무원 시키지 않겠다며 치를 떤다는 기사 제목도 봤는데 막상 클릭해서 보면 내용은 별 게 없다. 대부분 좁은 기내에서 진상 승객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그만둔다는 식인데 내 경험과는 많이 다른 얘기다. 물론 진상 승객들이 있기는 하다. 땅콩 회항 사건처럼 오너 일가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 상대하는 서비스 직군에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는 경우가 있을까?
뉴스가 자극적인 이유는 그래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승무원들 해외 많이 나가고 맨날 꿀이나 빤다고 하면 그런 기사를 누가 보나.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죽을 고생을 한다 해야지 읽는 맛이 나는 법이다. '최수종 하희라 지금도 서로 행복해' 이런 기사는 본 적이 없다. '최수종 하희라 결혼 20년만에 결국...' 이쯤 되야 클릭이라도 하지. 클릭해도 20년만에 결국...건물주 됐다 뭐 이런 내용이겠지만.
가끔 승무원 출신이라고 하면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유독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단점만을 부각하는 글을 쓴다는 점이다. 시니어리티(군대식 위계 문화)가 심하다거나 불규칙적인 스케쥴 때문에 인간관계 유지가 어렵다거나 밤낮이 바뀐 생활로 인해 몸이 힘들다거나 등등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난 그분들이 올리는 글에도 뉴스 기사와 똑같은 맥락이 숨어있다고 본다. 승무원을 해본 사람이 승무원을 찰지게 까는 내용이 더 자극적이고 장사가 잘 되기 때문 아닐까?
어떤 블로그에서는 '사실 승무원은 밥 갖다 주고 화장실 청소나 하는 직업'이라고 하는 글도 보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고귀하고 우아하기만 직업이 과연 있기나 할까? 일찍이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원샷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 일이란 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정해진 게 아니다.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보는 개인이 있을 뿐이다.
백번 양보해서 밥이나 주고 화장실 청소나 하는 직업이라고 쳐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 판단도 할 수 없다. 그저 그 일이 싫은 사람이 있거나 그런 일에서도 가치와 보람을 찾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난 내 일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 꼽자면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타는 사람들의 그 설레임이 느껴져서 좋다. 사람들이 비행기에 타면 기대도 하고 살짝 긴장도 하면서 묘한 느낌을 풍기는데 그런 기분이 전달되는 게 좋다. 그 기분이 느껴져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먼저 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힘들 때도 있지만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 난 전혀 그만둘 생각이 없다. 몸이 버티는 한 정년까지 야무지게 해먹고 은퇴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