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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02. 2023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기내에서 승객들이 보는 드라마나 영화, 책 제목을 유심히 관찰한다. 승객들이 나한테 추천하는 콘텐츠라고 여기고 비행 끝나고 집에 와서 보곤 하는데 별로 실패한 기억이 없다. 대한항공 승객 수준, 엄지 춱!


철마다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있을 때 기내에선 장관이 연출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한창 인기였을 때는 기내가 마치 거대한 <더 글로리> 상영관 같았다. 시차를 두고 거의 모든 좌석에서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연진아" 장면이 나왔고 그 상황이 어리둥절한 한 외국인 승객이 “저 무비 틀어줘”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난처할 때도 있다. 미드 <왕좌의 게임>이 한창 인기있을 때, 마침 드라마를 보는 승객이 있으면 바닥만 보고 지나갔다. 나 아직 안봤다고 안봤다고!!!!


기내에서 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보지만 책을 읽는 승객은 많지 않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기내에서도 책을 보는 사람은 귀하다. 얼마전 일등석에 70대의 모 기업 회장님이 탑승했다. 손 때 탄 캐리어를 오버헤드빈에 올리려 하자 ”아이고 내 짐은 내가 올려야지“하시며 손사레를 치던 분이었다. 그 승객은 비행 내내 <쇼펜하우어 인생론>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또 그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는 10년도 더 되어 보이는 노트에 필사까지 했다. 책 읽는 승객은 많이 봤어도 필사를 하는 승객은 처음이었다. 


집에 와서 밀리의 서재로 쇼펜하우어 책을 검색해 읽어보았다. 내용 중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사교성이란 지성과 반비례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고독으로 두 가지 이익을 얻는다. 


첫째. 자기 자신과 함께할 시간을 얻고

둘째. 타인과 함께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고독은 상태가 아니라 능력인 셈이다. 그는 사교성은 도덕적으로 떨어지고 지적으로 우둔하거나 불합리한 사람과 접촉하게 만드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나를 비롯해 대다수 현대인이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을 그에 반대되는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는데 쇼펜하우어는 정반대로 말한 것이다. 


실제로 상담사를 찾는 사람들의 고민 중 99%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알려져 있다. 쇼펜하우어는 ‘비사교적’이라는 것은 사교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사교가 필요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행복인 것이다. 


사교성은 좋은 것, 고독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던 내 고정관념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맞다 나 친구 없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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