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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01. 2023

삶을 구원해주는 두 가지

일상의 잡다한 고민으로부터 나를 구원하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고양이. 밤에 자려고 누우면 우리집 고양이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나에게 온다. 첫째는 내 품을 파고 들고 둘째는 내 머리맡에 눕는다. 막내는 남편 품을 향한다. 신기한 건 고양이를 안고 있을 때는 아무런 걱정이나 근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고양이의 갸릉거리는 숨결과 얕은 먼지향과 말랑말랑한 감촉만 느껴진다. 온 우주가 마치 고양이로 가득한 것처럼 모든 감각과 생각이 고양이에게 쏠린다. 명상을 하지는 않지만 명상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속세의 번민으로부터 나를 구원하는 다른 한 가지는 일이다. 해결하기 어려운 온갖 걱정과 불안이 똬리를 틀고 나를 둘러싸고 있더라도 기내에 올라 일을 하기 시작하면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을 잊게 된다. 내가 해야할 일이 있고 그것을 하나 하나 해나가다 보면 걱정과 불안을 딛고 내 삶이 어딘가로 전진한다고 느낄 수 있다.


난 2008년부터 승무원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지각이나 결근 한 번 없었고 동기들 중 가장 먼저 '5천 시간 비행 표창'도 받았다. 그러다 이쯤에서 좀 쉬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일이 힘들어서는 아니고 막연히 안식년 같은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생각했다. 실제로 장기 무급 휴직을 신청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터져 강제 휴직에 돌입했을 때 처음에는 내심 기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일을 하지 못하니 내 머릿속을 옥죄는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간의 여러 실책들과 신경쓰지 못했던 문제들이 우 몰려와 나를 두들겨댔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업무에 복귀했을 때 일이 나를 구원하고 있었음을 명료하게 깨달았다.


미래가 불안하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고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려울 때일수록 일을 하면 무언가 힘이 생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일을 하면서 삶을 사랑하는 힘을 돌려받고 일을 통해 전진하는 힘을 얻는 것 같다. 오늘은 파리 장거리 비행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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