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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01. 2023

2023년 신입 승무원 특징

안녕하세요, 김00 팀장님이시죠? 전 김영희(가명) 승무원 엄마에요.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다른 건 아니고 애를 맡겨놓고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당연히 인사를 드려야죠. 여보 조용히 좀 해요. 나 지금 영희네 팀장님하고 통화 중이잖아. 아유 팀장님 죄송해요, 팀장님께서 항상 저희 애를 잘 챙겨주신다고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 다른 승무원도 다 똑같이 대하신다구요? 여보 바깥 시끄러운데 창문을 왜 열어? 덥다고? 덮다는 사람이 점퍼는 왜 입고 있어? 아 팀장님 죄송해요. 어디까지 말씀드렸죠? 맞다 우리 애 잘 챙겨주신다고. 그래서 언제 한 번 찾아뵙고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아 괜찮으시다구요? 그럼 용건만 짧게 말씀드릴게요. 다른 건 아니고 저희 애가 몸이 좀 약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몸에 좋다는 보약도 많이 챙겨 먹이고 그랬어요. 근데 애가 비행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골골대는 것 같아서요. 집에 오면 바로 골아떨어지는데 잠꼬대까지 하더라구요. 뭐라드라? 화장실 청소가 너무 힘들다. 화장실 청소만 안해도 참 좋겠다. 그러니까요. 팀장님 제 말이요.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 저희 애는 화장실 청소 빼주시면 안될까요? 안된다구요? 에이 그래도 팀장님이 힘을 좀 쓰시면 될 것 같은데... 아 안돼요? 안되면 어쩌지? 우리 애가 너무 힘든데 아유 이 일을 어쩌나 큰일이네. 팀장님 정말 안될까요? 


통화 내용은 나의 상상이다. 하지만 23사번, 그러니까 2023년 공채로 채용된 따끈따끈한 신입의 어머니로부터 이런 내용의 전화를 타팀 팀장님이 받은 건 팩트다. 회사에 전화하는 부모가 있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본 적은 있는데 설마 우리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이런 부모들은 자식을 힘들게 하는 장애물들을 싹다 치워준다고 해서 불도저 부모, 제설기 부모라고도 한다. 애가 학교에 가면 선생에게 전화해 특별 대우를 요구하고 다 큰 아들이 군대를 가면 상관에게 전화해 "우리 애가 신발끈을 잘 못 묶는다"며 선처를 부탁한다. 


부모가 자식들의 일을 대신 해주거나 길 위의 방해물을 모조리 제거하면 과연 그런 부모들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자립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도 이런 '과잉양육'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일이다. 넘어져봐야 걷는 법을 배운다. 


물론 부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우리 남편만 해도 대한항공에서 제공하는 가족 티켓으로 나와 함께 비행을 할 때는 화장실만 가면 그렇게 승무원마냥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온다. 누가보면 남승(남자승무원)인 줄. 아무튼 부모나 가족의 마음은 다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승무원으로 오래 일하려면 화장실 청소 뿐 아니라 기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많이 경험해야 한다. 특히 먹고 싸는 건 인류 전체의 중대 사안인 만큼 화장실 컨디션을 계속 체크하는 건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다. 


그나저나 저 전화받으신 팀장님도 대단한 것 같다. 나 같으면 적당히 예예 하고 넘어갔을 것 같은데 몇 번이고 "안됩니다" 단호박을 시전하셨다. 모르긴 해도 저 팀의 23사번 막내는 저런 팀장님 밑에서 99%의 확률로 많이 실수하고 많이 배우고 그만큼 많이 성장하면서 진짜 어른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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