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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May 22. 2017

#01. 화전, 봄을 얹은 떡

시절음식

세상에 예쁜 음식이 많지만,

화전만큼 로맨틱한 음식은 없을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짜로 주는 예쁜 선물, 꽃을 얹은 떡이라니!

게다가 이 요리는 꽃을 따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화전[花煎, hwajeon / Pan-fried Sweet Rice Cakes with Flower Petals]'은 찹쌀 반죽에 제철 꽃잎을 장식해서 지진 떡으로 다른 말로 꽃지지미 또는 꽃부꾸미라고도 한다. 답청(踏靑) 행사에서 나온 풍속으로 화전 중에서 두견화전은 삼월 삼짇날에 부녀자들이 화전놀이를 하며 지져 먹는 시절 음식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 양력으로는 3월 30일)이 옛날에는 부녀자들의 '공식 꽃놀이 날'이었다고 한다.(궁중에서도 중전을 모시고 창덕궁에 나가서 화전을  부쳐먹으며 놀이를 하였다 하니 꽤 유명한 휴일?이었나 보다) 이 시기에 지천에 핀 참꽃, 즉 진달래 꽃잎을 올린 떡이 진달래 화전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봄놀이 도시락 음식쯤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의 김밥쯤이었을까? 아님 캠핑족의 삼겹살 같은 것이었을까? 어쨌든 산 중턱까지 솥뚜껑에, 찹쌀까지 지고 가서 요리를 했을 모습을 생각하니까 왠지 귀엽다.


나도 꽃 사냥부터 나섰다.

요즘에는 '식용꽃'이라고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유기농 꽃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진달래는 잘 못 찾겠거니와 옛날 사람들처럼 해보고 싶었다.

4월, 뒷산은 다른 곳보다 더 오래 벚꽃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편애하고 있을 때,

나에게는 진달래, 개나리, 초롱꽃, 할미꽃, 이름도 모르는 꽃 등이

'나도 여기 예쁘게 있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 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진달래, 개나리, 쑥, 벚꽃을 조심스럽게 모아 왔다. 


 <!!>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긴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진달래와 철쭉을 색으로 간신히 구분하는 나에게는 꽤 난감한 소식이었다.




<재료>

1) 반죽 _ 찹쌀가루 2컵, 소금 조금, 끓는 물 5~6큰술(경험상, 반죽 상태에 따라 더 넣어도 됨)

2) 화전에 올릴 것 _ 진달래꽃, 개나리, 벚꽃, 쑥 등 독성 없는 꽃과 잎

3) 기타 _ 식용유, 설탕 약간 또는 꿀, 조청


<방법>

1) 준비한 꽃을 다듬고, 씻고, 말린다.

꽃술에 독성이 있어서 떼어내야 한단다.

꽃송이 뒤에 꽃받침을 끊어서 잡아당기면 잘 빠진다.

이것을 흐르는 물에 씻고 잠시 물에 담가 둔다.

씻은 꽃잎을 꺼내 키친타월로 살살 눌러 물기를 없애둔다.


2) 찹쌀가루에 간한다는 느낌으로 소금 조금을 넣고(검색 결과, 소금은 생략하는 경우가 더 많다)

'끓은 물'을 넣어 반죽한다.

 이 단계가 난관이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를 백번쯤 외쳐야 완성이 될 만큼

찹쌀이 좀처럼 뭉쳐지지 않는다.

대부분 찹쌀 2컵에 4숟가락 물을 넣으라는데,

실제 해보니 더 많이 들어갔다.

다음에 할 때는 처음에 5~6숟가락 넣고 안 되겠다 싶으면 2숟가락 정도 더 넣겠다. 

하지만 처음부터 물을 많이 넣으면 질어지니 반죽상태를 봐 가면서 넣어야 한다.


<!!>
레시피를 찾다 보면 '찹쌀가루를 익반죽 한다'고 쓰여있다.
익반죽은 '따뜻한 물로 반죽한다'는 건데,
찹쌀가루도 낯선데, 익반죽이라니... 찾아보니,
쌀은 밀처럼 찰기가 없는데,
끓는 물을 넣으면 쌀가루가 조금 익으면서 모양을 만들 만큼의 찰기가 생긴다고 한다.
컵라면에 차가운 물을 넣는 실수를 하 듯, 찬 물로 반죽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3) 반죽을 지름 4~5cm 정도(꽃잎 크기에 따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로 떼어내 동글납작하게 만든다.


4)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3)를 올려서 '약한 불'에 지진다. 

여기서 '약한 불'이 포인트다.

불이 세면, 튀긴 것처럼 표면이 울퉁불퉁해지고 색이 누리끼리해진다.

이래도 되나 싶게 얕은 불에서 인내심을 갖고 지져야 맑게 지져진다.

만드는 과정도 오랫동안 겨울을 기다렸다가 만나는 봄과 같다.


5) 가장자리가 투명하게 변하면 뒤집고,

익은 부분에 꽃을 올리고, 살살 눌어서 모양을 잡는다.

꽃잎이 얇아서, 기름 뭍은 떡에 잘 달라붙으므로 한 번에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6) 다 익었다 싶으면, 다시 뒤집지 말고 (그러면 꽃이 누렇게 된다) 바로 접시에 담고,

설탕을 솔솔 뿌리거나, 꿀과 곁들여 낸다.

숟가락으로 눌러서 푹신하다 싶으면 다 익은 거라고 한다.

중간에 슬쩍 부푸는 것도 있는데 걱정 안 해도 된다.

접시에 두면, 식으면서 바로 푹 꺼진다.



그런데, 벚꽃은 약간 쓴 맛이 났다.

그제야 그 많은 꽃들 중에서 진달래나 국화, 쑥이 화전용 꽃으로 많이 쓰였는지 알았다. 

(그 외에 제비꽃, 사과꽃, 맨드라미, 배꽃, 복숭아꽃, 백합꽃, 석류화, 옥잠화, 감국 잎 등 사용)

그들에게는 쫄깃한 지짐이와 어울리는 부드러운 맛이 있었다.

이것저것 계절이 내어준 것을 먹어본 조상들 덕분에

먹을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나저나 봄뿐 아니라 여름, 가을꽃으로도 화전을 해 드셨다 하니,

식어도 쫀득쫀득하게 맛있는 지짐 떡을 씹으며,

올여름과 가을, 새로운 꽃이 만개하는 시절에 또 꽃 사냥을 나서 보기로 했다.




신윤복〈연소답청(年少踏靑)>《풍속도화첩》, 18세기 후기, 종이에 담채, 28.2×35.6㎝, 국보 제135호, 간송미술관

      

신윤복이 삼월 삼짇날 전후로 선비들이 기생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꽃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것이란다.

봄놀이 가고, 화전 먹고 하는 모습의 원형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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