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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Oct 28. 2020

유유상종

너를 닮은 나를 

유유상종은 '비슷한 사람들이 친구가 된다'는 말이다. 내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먼저, 가리움 없이 크게 웃는 얼굴들이 바람을 가득 채운 풍선처럼 통통 떠오른다. 쑥스러워 웃음을 입에 물고 있는 친구는 있어도 웃음에 인색한 얼굴은 없다. 말투가 사근사근하거나 조심스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일부러 면박주거나 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려는 경우는 없다. 누가 일부러 그럴 까 싶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고, 할 수 없이 그들과 섞여 실갱이를 하다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게다가 친구들은 웃기다. 자신들을 소재로 웃길 줄 안다. 자신을 남들에게 순순히 내어주는 만큼 솔직하다. 그들은 다정하여 나 말고도 친구가 많다. 더러 자주 만나지 못해도 섭섭하지 않다. 보고 싶을 때쯤 누구던 말을 걸어 보면 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낫다. 


<친구의 초상> 구본웅, 1935, 65.5 x 53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걀죽한 얼굴에 높게 뻗은 콧대, 예민하게 치켜올려진 눈썹 아래 충혈된 듯한 암갈색 눈매, 얼굴의 반을 가린 무심한 턱수염과 그 가운데 핏빛 할 말을 물고 있는 입술. 어둠 속에서도 빛을 뿜는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이 밤 골목길을 천천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반사된 찰라의 인상 같다. 이는 화가 구본웅이 그린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 김해경의 초상이다.


구본웅(1906-1953)과 이상(1910-1937)은 평생을 함께한 막역한 친구지만, 유유상종이라고 보기 쉽지 않다. 둘은 소학교(현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로 만났지만, 구본웅이 이상보다 네 살 많다. 구본웅이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세살쯤 유모의 실수로 댓돌에 떨어진 이후 등이 굽고 키가 자라지 않는 척추장애를 갖게 됐다. 당시 구본웅을 ‘조선의 로트렉’이라고 불렀는데, 프랑스에서 활동한 인상파 화가인 툴루즈 로트렉 또한 이탈리아 명문가에서 태어나 사고로 척추 장애를 얻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순수하지만 그만큼 솔직하다. 놀림을 받으며 외롭게 지내던 구본웅에게 다가온 친구가 이상이다. 구본웅은 일찍이 개화한 명문가의 외동 아들로서 아픈 아들의 요구라면 다 들어주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 파리 유학파 화가인 이종우, 우리나라 최초 서양 조각가인 김복진 등 당대 이름 있는 예술가들의 지도를 받으며 동경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제국미술원전람회에서 조선인이 그린 서양화로는 처음으로 입선(1931)하고, 귀향 후 치뤄진 대규모 개인전에 관심이 쏟아지며 순조롭게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반면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은 어렷을 때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은 후, 가족의 교육열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를 수석 졸업하여 조선총독부 건축과에 특채로 취직했다. 동시에 대학시절 독학으로 그린 ‘자화상’(1931년)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할 정도였던 그는 그림을 너머 글로써 예술적 기질을 풀어냈다. 이상한가역반응,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그의 글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난해하고 전위적인 것들이어서 천재가 나왔다는 관심과 장난 치는 거냐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둘은 외모도 달랐는데, 둘의 친구인 삽화가 이승만이 설명을 남겼다.


<이색적 멋쟁이 이상과 구본웅> 풍류세시기 중
 '며칠 전에 구화백과 이상이 백천온천으로 놀러 갔더니, 애들이 서울서 곡마단이 왔다고 두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창피해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상은 평생 빗질을 해본 적이 없는 텁수룩한 머리와 양인(외국인)같이 창백한 얼굴에, 숱한 수염이 장대같이 뻗치었고, 보헤미안 넥타이에, 겨울에도 흰구두를 신고, 언뜻보아 활동사진(영화) 변사(해설자)같은 어투로 말하는 것이 곡마단의 요술쟁이 같았을 것이고, 거기다가 구화백은 곱추인데다가 땅에 잘잘 끌리는인바네스(연미복 또는 이브닝코트 위에 걸치는 소매 없는 외투)를 입고 중산모를 썼으니, 이 괴상한 두 사람의 콤비가 애들의 호기심을 끌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이승만, 『풍류세시기』, 중앙선서 1(중앙일보사, 1977) 중-


유유상종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난다는 말이지만, 동시에 내가 만나는 사람과 닮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좋은 사람들과 애써 만나야 하고, 애써 시간을 내어 좋은 기운, 영감과 마주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90세가 넘은 수녀님을 소개 받으며 들은 이야기이다. 이 관점에서 구본웅과 이상은 유유상종이다. 이 자화상이 증거다. 그림 속의 이상이 물고 있는 파이프 담배는 위의 삽화에서 보듯이 구본웅의 것이다. 모자도 그렇다. 이상은 아무렇게나 자라는 머리를 휘날리며 다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작품 제목이 ‘우인상(친구의 얼굴)’일 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쉽게 이상의 인상을 찾아내지만, 실제 이상의 외모와 꼭 닮았냐 하면 그렇다기도 아쉬운 느낌이 있다. 그림 속에 스며든 침침한 절망과 그럼에도 번뜩이며 버티고 있는 생명력은, 이상의 것이자 동시에 구본웅 내면의 자화상이다. 서로 위로와 기운을 나누고, 영감을 북돋아 온 구본웅과 이상은 그만큼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구본웅은 이상이 가정형편 때문에 화가로서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 화구통을 이상에게 주었다. 이상이 정말 기뻐하면서 나무 목자가 들어간 이(李)씨에 화구통을 뜻하는 상자 상(箱)으로 본명인 김해경을 대신할 필명을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구본웅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는 대신 시대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예술계를 유영하는 이상을 인정했다. 이상이 요즘으로 치면 안정적인 공무원직인 조선총독부를 그만두고, 제비, 쓰루, 69 등 다방을 몇 개나 열었다 파산할 때마다 다시 일어설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소설 날개의 주인공으로 짐작되는 화류계 여인 금홍에게 버림받고 실연을 겪을 때는 여류 문인 변동림을 소개했다. 그녀는 젊고 당당한 신여성으로, 구본웅 새어머니의 이복여동생, 즉 어린 이모였다. 이상의 결핵병이 심해졌을 때는 요양을 위해 함께 온천을 찾았고, 이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재기를 꿈꾸도록 돕고자 한 것도 구본웅이다. 이상이 죽고 나서 절친이었던 구본웅에게 이상에 대한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철저히 함구했다. 자신으로 인해 이상이 해석되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이상의 얼굴을 그린 것이라고 한 적이 없으나, 한 눈에 이상의 얼굴임을 알아본 이마동과 이구열을 통해 문학사상 창간호 표지로 사용되면서 알려졌다. 구본웅은 그만큼 이상을 예술인으로서, 친구로서 조심스럽게 아꼈다. 


네 살 어린 이상은 구본웅에게 높임말을 쓰며 깍듯이 그러나 누구보다 다정하게 대했다. 구본웅은 몸도 아팠지만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평생 괴로웠다. 친구들이 장애인과 다니는 것을 불편해 하거나 걱정할까봐 되려 늘 유쾌하고 호탕했다. 그래서 이상은 소설 <봉별기>에서 '이튿날 화우(畵友) K군이 왔다. 이 사람인즉 나와 농(弄)하는 친구다.' 라고 소개한 것처럼 그를 더욱 아무렇지 않은 농담으로 대하고, 그에게 마음껏 의지하며, 구본웅이 장애라는 소라 껍데기로 들어가 숨지 않도록 자꾸 밖으로 불러냈다.〈且8氏의 出發〉은 구본웅에 대한 시로 알려져 있다. 여러 은유로 인해 해석이 분분한데, 국문학자 권영민의 해석을 통해서 이상의 구본웅에 대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且8氏'의 '且'는 구본웅의 성씨인 '具(구)'자를 분해했거나 모자를 쓰고 다닌 구본웅의 모습을 빗댄 것으로, 시의 제목이 <구본웅의 출발>이란 의미다. 시에 언급된 '곤봉'은 유화 붓의 몸통이고, 척박한 대지에 꽂힌 곤봉이 자라나 산호 나무가 되는 이야기는 구본웅이 육체적 불구로 의기소침해 지는 일 없이, 위대한 예술가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시는 말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말 없는 시라는 말이 있다. 이상의 시는, 띄어쓰기도 안하고, 은유투성이에, 형식과 형태 파괴이다. 구본웅의 그림도 다르지 않다. 구본웅을 한국의 야수파 창시자, 1인자라고 하는데, 야수파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야수에서 이름이 왔다. 기존의 색과 형태를 야수처럼 파괴해버리고, 대신 개성적인 방식으로 풀어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다. 이상과 구본웅 모두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결핵과 척추장애라는 아픈 몸을 가진 청년으로서 둘은 다른 방법으로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술가로서, 서로가 서로를 동경하고 북돋는 친구로서, 완벽한 유유상종이다.


나는 여전히 잘 웃는 사람이 좋고, 웃긴 사람은 더 좋다. 그 중에 자신을 소재로 웃길 줄 아는 사람은 사랑스럽다. 사람들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며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이 간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가 필요할 때를 가늠하고 조율하는 세심한 배려에 감탄한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을 응원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각자의 몫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이런 사람들이 내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 행운을 위해서라도 나는 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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