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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Oct 27. 2020

기다림

천천히 성실하게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네가 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너의 흙 묻은 외투를 받는 것이 나의 인사이다. 


정화수 같이 맑은 물로 너를 씻기고

소금 같이 하이얀 이불에 너를 눕힐 수 있는 것이 나의 감사이다.


고단한 네가 곯아 떨어질 동안

끓이고 다지고 채썰고 버무려 맛있게 붉은 밥상을 차리니

이것으로 너의 빈 속을 꽉꽉 채우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너 몰래

네 옷 깃 켜켜이 주전부리를 꼽아두니

우연히 찾아 먹도록 하는 것은 나의 선물이다.


그러니 어서 와서 엄마가 담근 김치를 먹거라. 

배춧잎 켜켜이 숨겨둔 편지 같은 굴도, 갈치젓갈도 찾아 먹거라.

아삭아삭 네가 소리 내어 먹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니

어미는 올 해도 너를 기다려 김장을 담근다.


<저녁 준비> 조병덕, 1942, 90 x 117cm, 캔버스에 유채

                                              


조카가 태어난 해에 엄마는 늦은 김장을 했다. 식구가 많지도 않고 손도 많이 가서 김치 사먹은 지 꽤 된터라 새삼스러웠다. 게다가 조카는 김치는 커녕 제 엄마 젖만 물고 있으니, 이 김치는 내가 가장 많이 먹을 것이 뻔해서 이걸 미안하다고 해야할런지 고맙다고 해야하런지… 하여튼 집 안에 기쁜 일이 있으니 해야하는 거라며 특별히 속이 투명한 팔닥거리는 생새우도 넣었다. 조카가 태어난 덕분에 김장에게도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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