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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Oct 09. 2020

언니들에게

읽을 수 있는, 읽힐 수 있는

돌이켜 보면, 학교 다닐 때도 2학년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몰라서 좋았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어리둥절한 1학년에 비해 요령껏 거들먹거릴 줄 알며,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졸업반의 책임을 대충 얼버무리며 지냈다. 회사에서 중간 매니저가 된다는 것과 인생에서 중년의 나이가 되는 것은 2학년처럼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제껏 큰 관심 없던 선배들에게 조금씩 눈길이 간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이해하는 맥락인지, 경험해보지도 못한 80-90년대의 문화를 즐기는 2000년대 생들의 신복고풍 경향이 나에게도 작용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선배들의 자리에 서 보면, 그때 후배로서 내가 알고 느꼈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훨씬 복잡한 영어 단어들과 문장 구조를 배운 후에야 중학교 때는 모르겠던 문장을 해독한 기분이다. 만화 둘리를 볼 때, 히스테리의 전형으로 보였던 고길동 씨가 이제는 기어다닐 뿐인 어린 조카와 온갖 외계 생명체를 거두어 먹인 속 깊은 가장으로 느껴지는 것 등이다. 하여튼 이런 개안이 뜬금없이 (1930-40년 사이에 태어난) 여든이 넘은 선배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경험한 일본 식민시대, 전쟁, 가난에 대해서는 그동안 꽤 많이 듣고 읽었지만, 그 경험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마음은 지금껏 배우지 않았고, 앞으로도 배울 의지가 없는 외국어로 써진 책처럼 대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굳이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나 우리 시대의 안정이 그들의 젊음을 담보했다는 부채감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오래 함께 지내왔는데도 한 번도 물어보지 않고, 들어보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에 놀라서! 무지와 미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언젠가 그들과 함께 사라질 그들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궁금하다.


<시골소녀> 이영일, 1928, 152X142.7㎝, 비단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등록문화재 제533호 (2013)


작은 아이의 단발머리가 풍향계처럼 움직여 바람의 세기를 짐작하게 해 준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추수를 끝낸 후 떨어진 낱알을 주어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 늦가을에서 초겨울 즈음일 텐데, 아이들의 옷은 얇고 심지어 큰 아이는 맨발이다. 그나마 어린이다운 면모를 찾을 수 있는 빨간 치마와 댕기 마저 찬 바람결에 힘없이 펄럭이고 있다. '왜 누나 등에 업혀있어? 힘들게...' 나로부터 핀잔 섞인 눈총을 받고만 막내의 작은 온기가 소녀에게는 그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창덕궁 창고에 방치되었던 것을 발견해 복원한 탓에 누렇게 낡고 여기저기 얼룩져 있어 마치 빛바랜 사진 같다. 작가가 시골에서 상경하는 길에 실제 기차 창밖으로 본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니, 그림은 세 남매의 사진이나 다름없다. 제목이 ‘시골 남매’가 아니고 ‘시골 소녀’인 만큼 사진 한 장 들고 사람을 찾는 다큐멘터리처럼 ‘소녀’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러자 인상착의가 비슷한 소녀들이 많이 보인다. 김기창의 '가을(1934)'에는 잠든 동생을 업고도 머리 위에 묵직한 바구니를 얹고 있는 소녀가 있다. 장욱진의 '공기놀이(1938)'에도 놀이에 함께 어울리지는 못하고 아기를 업은 채 한켠에 서 있는 소녀가 있다. 박수근의 그림에는 '아기 보는 소녀(1963)', '아기 업은 소녀(1953)' 외에도 아기와 한 몸이 된 똑 단발 소녀들이 흔하고, 아이들의 한가로운 순간을 그린 박상옥의 '시골 풍경'이나 '후방의 아해들(1958)'에서도 아기 업은 소녀가 고정 출연이다. 도대체 왜 이리도 많은 소녀들이 어찌 그리도 동생들을 업고 다니는 건지! 찾는 대상이 소녀에서 소녀'들'로 넓어질 때 즈음, 우연히 TV에서 그녀들을 찾았다.


한글날 특집에 나온 서울 양원 문해학교에서다. 보글보글한 파마 머리와 주름 때문에 알아보는데 한 참 걸렸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명했다. 글을 배우는 대신 어린 동생을 업고 어른들의 걱정을 나누어 짊어졌던 소녀들의 나이를 셈해보니, 대략 1930년대 초중반 생부터 1950년대 중후반 생까지에 이른다. 통계에 의하면, 내가 찾던 소녀들 10명 중 3명은 80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평생 글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1)


"혹시 뭘 써서 내라고 할까 봐 아이들 학교에 한 번을 못 갔어.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봤지. 깁스 때문에 못쓴다고 해도 되니까."
"먼저 간 다정한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못 해봤어요. 글도 모르는 내가 창피해서 그이 앞에서 늘 자신이 없었거든요. 나중에 만나면 사랑한다고 열 번 말하고 싶어요."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려고 해도 신청서를 작성할 수 없으니까..”
"메뉴를 읽지 못하니, 식당 가서 매번 백반만 먹었어요. 이제 메뉴판 읽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그녀들은 인터뷰를 통해 ‘읽지 못하는 세상’이 어땠는지 말했다. 내가 흔들린 지점은 그녀들이 전혀 특별하지 않아 보였고, 오늘도 길에서, 버스에서, 식당에서 마주쳤던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이었다. 이토록 가깝게 있던 그녀들의 캄캄한 구석을 몰랐다는 사실이, 다만 ‘읽지 못하는 세상’ 뿐 아니라 ‘읽히지 못하는 세상’ 때문에 더 외로웠겠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빠졌다. 어쩌면 우리가 대한민국 문맹률 1% 이하를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우리는 이 소녀들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화 <칠곡 가시나>,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도 찾아봤다. 다행인 것은 그녀들이 여전히 예쁘다는 것이다. '읽을 수 있는 세상'을 가진 늙은 소녀들은 자꾸 잊어버린다고 앙탈을 부리면서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단어를 읽고 써보길 계속한다. 동생들과 자식들을 태웠던 등에 이제 분홍색 책가방을 얹고 '글자를 아니까 사는 게 더 재미있다'라고 말하는 그녀들이 소녀소녀하다. 글을 깨우쳐 읽는 그녀들의 진짜 마음이 소녀 때에 머무르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그래서 이제 '읽을 줄 아는' 그녀들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


노래 노래 하고 싶었는데
이래 저래 힘들어서
몰래 몰래 울었다던
언니에게

그래 그래 가벼웁게 지내요
오래 오래 재미있게 지내요
 


이영일(1904-1984)은 조선 후기 왕족 출신으로 군인, 고위 관료, 사상가였던 아버지와 일본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도쿄에서 본격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당시 화가의 등용문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속 7회에 걸쳐 특선을 차지했다. 조선인으로서 이례적으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강약이 없는 가는 선, 선명하지 않은 경계로 만드는 몽환적인 느낌 등이 전형적인 일본풍이다. 이런 점으로 ‘시골소녀’가 2013년 문화재로 등록되었을 때, 그의 친일 성향을 이야기하며 몇몇 다른 작가들의 그림과 함께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늙은 소녀들을 통해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를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이지만, 위의 내용만 봐서는 환경적인 특징이나 운명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기도 한다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실제로 그림을 보면, 바랜 비단천에 머리카락은 번져 있지만, 얼굴은 부드럽고, 소녀의 저고리는 새것처럼 깨끗한 순백이라 기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작품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가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는 몰라도 화가이자 조각가로 왕성히 활동하던 그는 해방 이후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유창하게 구사했던 언어에 침묵을 고하고, 다만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에 성의를 다했다고 한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말을 새롭게 알게 되고 혹은 버리는 언어가 있을는지 인생에서 흥미로운 것이 생긴 것이 맘에 든다.



1)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1955년 대한민국 전국 문맹자 비율은 22.3%, 남자 12.2%, 여자는 32.1% 였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0.6%로 가장 낮고, 대체적으로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높아져 제주도 여자 문맹률이 42.7%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문맹 퇴치 교육을 이어가다 국민학교 진학률이 100%가 된 이후 문맹 퇴치 교육이 사라져 66년 통계 조사 수치가 마지막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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