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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Oct 27. 2020

민낯도 사랑해 줄 건가요, 그대여

사랑한다는 흔한 말 대신

‘제목 찾기’는 내가 즐겨해 보는 작품 감상법이다. 작품의 실제 제목을 확인하기 전에 유추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짧게나마 몇 날 며칠 작품에 매달렸을 화가의 눈으로 그림을 보게 된다.


‘이건 제목이 악마들인가? 성화도 많이 그렸으니까..’

‘아님 유혹? 아님 유혹에 빠진 바보들?’

‘이쯤에서 진짜 제목을 좀 볼까’

제목, <화가 난 우향>

‘........ ㅋㅋㅋㅋㅋ’

       

                                

<화가 난 우향> 김기창, 1960년대 초, 84x68cm, 종이에 수묵채색, 개인소장

 

그제야 뿔이 달린 얼굴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고, 심지어 하소연하는 듯이 처진 눈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색이 다채롭고 선이 뭉개져 부드러운 이유도 알겠다. <화가 난 우향>의 '우향'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부인인 박래현의 호이다.


"느지막이 집에 들어서다가 젊음이 싱싱히 풍기는 하이칼러요 멋쟁이요 그리고 둥근 얼굴에 큰 두 눈이 아름다운 당신과 마당 한복판에서 마주쳤구려. 순간 내 동공은 미끈한 종아리 아래 흰 하이힐에 머물렀소. 참 매력 있다 생각한 나요. 그때 그날이 우리가 서로 처음 만나던 순간이고,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소. (중략) 귀먹고 가난하고 학벌도 없는 나의 사정이 지주의 맏딸로 최고학부를 나온 당신의 처지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여건에 부딪쳤던 거요. 하지만 당신은 용감했소, 지혜로왔고 현명했으며, 무서울 정도로 자기 길을, 어쩌면 무수한 고난의 연속이 될 운명을 선택했던 거요. 우향. 고마웠소.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에 대해 고마운 정뿐이었소."


김기창(1913-2001) 화백은 어렸을 때 병을 앓고 청각을 잃었다. 부인이 앞에서 잔소리를 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완벽한 고요 속에서 그녀가 온몸으로 불덩이 같은 감정을 뿜어내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울그락불그락 거리는 표정과 팔짓, 용솟음치는 핏대와 주름, 변화무쌍한 얼굴의 색. 그런데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장면이 짜증스럽거나 무섭게 보였다기보다, 어쩌면 귀엽게, 어쩌면 미안하게, 어쩌면 더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운보는 박래현을 "둥근 얼굴에 큰 눈이 매력적인"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림의 얼굴도 둥글고 눈이 크다. 어느 날 그는 우향에게 다가가 이 그림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우향에게 그림의 제목을 맞추어보라고 했을 것이다. 한참 궁리를 하고 있는 우향을 보며 즐기다가, 준비했던 제목을 밝히고, 둘은 이화여대 뒷산에서 결혼 조건을 이야기할 때처럼 ‘까르르’ 웃어댔을 것이다.


"우리가 결혼하기로 정한 어느 날 오후, 늘 같이 다니던 이대 뒷산 아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이런 얘기를 했지. ‘우리가 결혼하면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해요.’ ‘무슨 조건?’ ‘첫째 우리가 같이 살아가다가 헤어질 경우 서로 친구로 우정을 계속해줘야 해요.’ ‘그리고?’ ‘둘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예술에 대해 간섭치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 ‘또 없나?’ ‘서로 인격과 예술을 존중할 것’ ‘시시해 그런 건.’ 우리는 유쾌하게 까르르 웃었다."


둘의 일상이 운보가 수필에서 우향에 대해 쓴 글 같이 다정하고 애틋하지만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자주 큰 소리를 내고 서로 눈을 흘겼으므로, 먼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두고 '나비처럼 와서 천사처럼 떠났다'며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서야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그런 면에서 부부가 마주하는 일상의 민낯을 이렇게나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멋지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감정과 감정을 겨룰 수밖에 없었겠지만, 부대끼는 마음을 짓궂게 그림으로 표현해 풀어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내가 아는 선배는 동갑내기 20여 년 차 부부다. 그들은 심심치 않게 툭탁거리면서도 늘 붙어 다닌다. 아직도 마음을 다해 삐치고 속상해하면서도 결국 분리불안증이 있다며 지금 보러 가야 한다고 냅다 자리를 나서곤 한다. 건너서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부부가 있다. 서로 어찌나 깍듯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지 친구 부부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사고 있단다. 그런데 이 남편에게 여자 친구가 있단다. 물론 부인 모르는. 무엇이 문제일까? 혹시 겨루고 왕왕대는 게 결혼 생활의 본 낯인데, 서로 배려하느라 그 민낯을 못 봐서 서로 낯을 가리는 것은 아닌가? 못난 모습일지라도 차라리 솔직하게 보여주고, 또 바라보아 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어쩌다 보니 결혼 생활을 아직 짐작할 뿐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쉽게 알 것 같다. 치약 짜는 방법, 신발 벗어 두는 방향, 심지어 베개 가까이에서 방귀를 뀌었다는 이유로도 하루 동안 말을 안 할 수 있는 것이란 걸 들었다. 하지만 서로를 돌보고, 때로 북돋아 주는 것을 볼 때는,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부럽고 내심 아직도 기대가 된다. 우향과 운보같이 결혼 조건을 이야기하기엔 내가 그리 셈이 밝지 못하고, 다만 평생 함께 하자면서 ‘꽃길’보다 ‘오르막길’을 이야기하는, 꽤 현실적이면서도 진짜 같은 윤종신의 노래 가사를 음미해 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봤다. 아니면 <화가 난 우향>을 보고 함께 낄낄거릴 수 있는 사람이어도 좋겠지 싶다. 이 와중에 제발 생각은 그만하고 노력으로, 행동으로, 아니 뭐라도 해보라는 친구의 잔소리가 꿀밤을 맞은 듯 번뜩 생각난다.


갑자기 화가 난다.


   

김기창과 박래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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