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곳에서 서성인다면
그러고 보면 특별히 첫눈을 기다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발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던 잉여로운 어렸을 때 정도? 붉은빛이 얇은 초승달만큼 남은 엄지발가락을 양말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보며 조바심을 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루고 싶은 첫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냥 목표 의식 같은 것으로.
그럼에도 눈이, 것도 첫눈이 오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리운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그리움 없이 '올 것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네!' 하는 이런 종류의 반가움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기다림이 있을 수도 있을까? 혹시 전생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은 약속 같은 것이 있었나? 이런 생각은 늘 첫눈과 함께 허무하게 녹아버리고 말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