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영 Oct 28. 2020

첫눈

아직 그곳에서 서성인다면

그 겨울 첫눈이 왔습니다.

그렇게 추운 밤이더니

이불을 끌어올리듯 하얀 솜 같은 눈을 몰래 불렀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대도 오세요.

이렇게 혹독히 추우니

약속도 없이, 소리도 없이

하지만 꼭 오세요.


<고관설경> 도상봉, 1969,  72.7x90.9cm, 캔버스에 유채

그러고 보면 특별히 첫눈을 기다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발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던 잉여로운 어렸을 때 정도? 붉은빛이 얇은 초승달만큼 남은 엄지발가락을 양말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보며 조바심을 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루고 싶은 첫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냥 목표 의식 같은 것으로.


그럼에도 눈이, 것도 첫눈이 오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리운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그리움 없이 '올 것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네!' 하는 이런 종류의 반가움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기다림이 있을 수도 있을까? 혹시 전생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은 약속 같은 것이 있었나? 이런 생각은 늘 첫눈과 함께 허무하게 녹아버리고 말뿐이지만.

이전 07화 남향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