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운에 대해
'당신의 생애를 마무리하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떠날 때, 살면서 만든 기억 중 단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1998)>가 던지는 질문이다.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묻는 바람에 영화에 빠지는 대신 내 기억을 헤집느라 바빠졌다. 주인공들에게서 힌트를 얻어보려고 다시 영화에 집중해봤는데, 정해진 시간 내에 아무 기억도 말하지 않으면 구천을 떠돌게 된다는 무서운 규칙만 파악했을 뿐이었다. 먼저 엄마를 떠올렸다. 이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집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르단 강을 건너서까지 질척이는 건 아니지 싶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성취했거나 만족스러웠던 것은? 학교나 회사, 시험에 통과했을 때, 잘했다고 칭찬받았던 일들… 이런 것들로 한 평생을 설명하려니 한참 부족한 기분이다. 연..애..? 안 되겠다. 이대로 구천을 떠돌게 될까 봐 초조해하던 차에 '그 별'이 생각났다.
해가 떨어진 논두렁이에 두 명씩 짝을 지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컴컴한 동산에서 이따금 번쩍번쩍 불빛이 스치고 꺄악~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걸스카우트 단원들의 담력훈련이다. 남은 무리도 조금씩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는데, 예방주사를 기다리는 것처럼 모두 예민했다. 근면하게 달려드는 모기도 짜증 나고, 다리도 저렸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위 좀 봐!" 순간 팔을 들어 머리를 감싸려다 말았다. 밤하늘이 그야말로 별들로 꽉 차 있었다. 하늘에 형광등을 켠 것처럼 밝아 지상의 어둠과 대비됐다. 게다가 손을 뻗어 별들을 건드리면 달그락 소리가 날 듯 낮게 떠 있어 언제든 우박 비처럼 와르르 떨어질 것도 같았다. 이것도 선생님들이 준비한 담력훈련인가! 위험을 감지한 걸스카우트 대원으로서 하늘과 땅을 모래시계 뒤집 듯 돌려서 깜깜한 밤하늘과 황금빛 논의 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하는가! 조금 전만 해도 피곤한 운명에 낙담하며 시들어 있었는데, 별안간 익숙한 세상이 뒤집힌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일종의 활기가 넘쳤다.
김환기(1913-1974)가 그린 별이다. 이 점들이 어떻게 별이냐고? 이 그림의 제목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김환기의 친구였던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과 같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러니 이 작품은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낯익은 별 하나와 마주 선 김환기가 읊는 시 같은 그림이다. 당시 뉴욕에서 생활하며 늘 한국을 그리워하던 김환기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가로 2.4미터, 세로 1.7미터가 되는 큰 화폭을 펼치고 몇 개월 동안 작은 네모와 점 그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 점들, 아니 별들의 모양과 농도가 각각 다르다. 별 하나는, 그의 기억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인 푸르른 섬과 바다를 떠올릴 때는 건강하게 점이 톡 찍히고, 보고 싶은 아이들을 점으로 그려 넣을 때는 살짝 번져 네모 공간을 채우고도 넘쳐날 듯했다. 친구들과의 살갑던 농담을 떠올릴 때는 어깨가 들썩여 개구진 점이, 맑은 하늘에 구름이 몽글거리던 서울 하늘을 생각했을 때는 통통한 점이 찍혔다. 그래서 세상 지루한 걸 못 참는 나로서는 상상 불가의 그림이 김환기에게는 곧 채워져 버릴까 봐 아까운 그림이었겠다 싶다. 다행히 이 그림에는 경계가 없어서 처음과 끝의 개념도 없는 덕에 김환기는 마음속으로 더 많은 별들을 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우주에 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의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고백건대, 김환기의 그림이 좋은지 잘 몰랐다. 캔버스 가득 찍힌 점들 앞에서 다소 무력해지기도 했다. '한국 최고 경매가를 경신한 가장 한국적인 작가'라는 수식어 때문에, '잘 모르겠다'라고 하면 안목 없음이 들통나는 것 같아 솔직하기도 어려웠다. 제목마저 ‘무제 1’,’ 무제 2’,’ 무제 3’이니, 제목에 의지할 틈도 안주는 무심함이 얄미워서 애초에 그의 그림들에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도 했다. "우주는 의미 없이 움직이는 심심한 곳이야, 근데 너로 인해 이 의미 없는 우주에서 큰 의미가 생겼어." 어떤 물리학 교수가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 고백 덕분에 한 여자는 사랑에 눈을 떴고, 나는 김환기 그림에 눈을 떴다. 똑같아 보이는 많은 점들 중에서 한 개의 점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그제야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찍어내는 김환기의 손길과 마음이 보였다.
김환기는 한국의 추상화를 이끈 모더니스트로서 안주하지 않고, 문화 예술의 중심지에서 자신을 늘 실험하고 담금질했다. 20대에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40대 중반에는 파리로, 50대부터 죽을 때까지 뉴욕에서 지냈다. 이런 그가 제일 사랑한 것은 다름아닌 조국이고 고향이었다. 이 무슨 '사랑해서 떠난다'라는 식의 알 수 없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김환기는 떠남으로써 더 열렬히 한국을 생각하고 사랑하게 됐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라고 그의 에세이에 남긴 것과 같이 그는 한국의 산, 바다, 달 그리고 백자를 그렸다. 특히, 파리 시절에 선반에 다양한 모양의 백자가 올려진 <백자를 올려둔 항아리(1956)>, 백자와 달과 매화꽃을 겹쳐 그린 <매화와 항아리(1957)> 등 백자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많다. 서양 문화의 중심지에서 다양한 나라의 화려한 도예품들을 본 김환기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실생활에서 그릇으로 사용되던 둥글고 하얀 백자의 평범한 아름다움이 더 단단하게 구워진 것이다. 그는 해외 생활 중에 뭣 때문에 이런 지독한 외로움 속에 사는지 나도 모를 일이라며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움 때문인지, ‘환기 블루’라고 불리는 그만의 푸른색과 한국적인 추상 화법을 개발해냈다. 서양의 점묘화는 비교적 동일한 크기와 모양의 점을 찍는데, 그는 점마다 담도와 크기를 달리해서 마치 먹으로 찍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 큰 캔버스를 들여다보니 작은 점들이 매직아이처럼 출렁인다. 어떤 것들은 섬에서 태어난 그에게 고향을 떠오르게 할 파도의 물결 같다. 또 다른 것들은 규칙적인 원을 그리고 있는데, 과학 책에서 본 별의 움직임이 생각난다. 해외에서 가벼운 향수병이 생기면 별은, 달은 한국 집에서 보던 것과 똑같다며 쳐다보곤 했는데, 혹시 김환기도 그런 것이 아닐까? 김환기 그림 속의 점들이 그의 고향, 아름다운 기억, 그리움으로 보인다. 자물쇠의 열쇠를 찾으니 문이 활짝 열린 것처럼, 무념무상이 걷히고 의미의 싹이 새순을 틔워 자라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비로소 그의 그림을 쳐다본 순간이었다.
밤하늘을 꽉 채운 별을 봤던 날, 담력훈련을 무사히 해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대신 '경외심'이라는 단어를 이해가 아니라 감각할 때, 그 별들을 떠올리곤 했다. 정리 안된 책상을 뒤적이다 대뜸 손에 잡힌 뜻밖의 메모 같은 별에 대한 기억을 곱씹어 보니, 이거다 싶다. 그 많은 별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별들로 가득 찬 우주적 시점으로 보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한참 모자라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다가 사라졌고, 나 또한 사라질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이 태어나 언젠가 사라질 자신들의 삶을 시작하는 규칙 속에서 내 몫의 삶이 새삼스럽게 짧고 그만큼 귀하게 느껴진다. 이제 인생의 단 하나의 기억을 고르라면 ‘그 별들’을 꼽겠다. 그래서 찬연한 지구에 공짜로 태어나서 태양, 노을, 구름, 바람, 꽃과 같은 온갖 경이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았던 나의 행운에 대해서 음미하고 싶다. 이제야 ‘내가 알던 사람들’과 나눈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또는 기억하지 못하는 기쁨과 감사, 사랑과 헤어짐과 미움과 미안함, 불안과 위안을 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동안 되도록 별을 많이 보고 싶다. 이렇듯 ‘별의별’ 생각을 좀 더 많이 하면서 사람들과 가능한 많이 웃으며 별일 없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