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열어본 양말 속. 큰 선물을 고려해서 특별히 아빠의 하얀 면양말을 걸어두는 살가운 배려를 해두었었다. 그런데, 누룽지였다. "어엄..마. 누.. 누룽지야." 서양 할아버지가 누룽지를 주다니. 믹스 앤 매치적 선물에 적지 않게 당황을 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고민이 시작됐다.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는데,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었던가? 어딜 봐도 별스럽지 않은 누룽지를 유독 맛있어 보인다고 하는 엄마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지만 착한 아이 인증으로 삼기에 아무래도 누룽지는 좀...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먹어, 선물도 다 줬는데, 네가 갑자기 양말을 걸잖아.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꺼내는데, 아차 싶었지. 그때야 뭐 24시간 편의점이 있기를 해? 아침 밥하면서 나온 누룽지를 급하게 넣었지. 그게 댓 살 정도 됐을 때일 걸?"
무플보다 악플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산타클로스가 깜빡하고 자신의 주전부리를 넣어두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았다.
'흥 그럼 그렇지'
몇 년 후다. 잠이 슬금슬금 들 때쯤 누가 방에 들어왔다. 잠든 척을 하고 있자 머리맡에 무엇이 놓였다.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다음 날 아침,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고 가셨네!" 말씀하시는 할머니에게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드렸다. 포장도 없는 가나 초콜릿 한 박스와 함께, 산타 클로스와 헤어지던 날이었다.
산타클로스의 빈틈을 본 아침 이후 기대감이 없었던 탓이었는지, 별다른 소란도 실망감이나 배신감도 없었다. 다행히 산타클로스 없이도 크리스마스가 즐거울 이유는 많았다.
어느 해부터는 크리스마스가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주위 분위기가 알록달록해질수록 나는 점점 무채색이 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본인들 생일도 아니면서!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부부 같네. 없으면 없는 대로 잘 보내면 될 것이지, 무리하더니만 결국 서로에게 쓸모 없어진 선물이나 하는 철없는 부부!'라며 크리스마스에 들떠있는 사람들을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말마다 다니던 스페인어 학원 선생님께 머리핀을 선물할 정도의 여지는 있었나 보다. 내 기분과 달리,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평소 보다 더 활달했던 초급 스페인어 수업을 그럭저럭 해내고, 포장도 카드도 없는 선물이 영 부족해 보여서 줄까 말까 생각하다가 "Feliz Navidad..(Merry Christmas의 스페인어)"하고 간신히 전했다. 그런데 반응이 대단했다. 스페인 문화권 특유의 오버 액션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이 보였다. 처음에는 '참 부산스럽기도 하구나' 싶었는데, 신기하게 점점 기분이 산뜻해지더니, 돌아오는 길에는 무채색이던 내 세상도 하나 둘 씩 고운 빛을 내는 듯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단지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몇 만리 넘어 사는 생면부지의 할아버지에게 거리낌 없이 선물을 바라는 던 버릇 때문에, 커서도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만으로 이날의 나는 응당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쁨과 설렘이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새로울 것 없는 현실이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선생님의 반응 덕분에 선물을 주고도 기쁜 나를 보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무엇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충분히 기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세 가지 선물을 준비해갔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크리스마스 선물의 기쁨은 애초에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있었다.
그분이 생각났다. 명동성당 앞에 깔아 놓은 보자기만큼만 땅을 차지하고 껌을 파는 아저씨였다. 가냘픈 몸이 몹시 불편해 보이지만 선하게 생긴 분이었다. 껌을 사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근 십 년을 성당 앞 배경처럼 봐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성당 앞을 떠나 하필 바람이 많이 부는 길 모퉁이로 자리를 옮기셨다. 내가 워낙 추위를 많이 타서 그런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래서 '좋은 선물 하나'를 하기로 했다. 1.5배 더 따뜻하다는 U사의 내복보다 더 적절한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포장도 하고 카드까지 썼는데 왠지 주뼛거리게 됐다. 결국 엄마가 인사를 하고 나는 멀뚱하게 서 있다가 힘겹게 내밷는 고맙다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고 자리를 떴다. 인사 한번 안 나누어 본 분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색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추위를 덜 탈 아저씨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았다.
앞으로 몇 번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할 수 있을지 셈해봤지만,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분명한 것은 올 해도 좋은 선물 하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올해 생각나는 분도 있었다. 이 번에도 성당 앞에서 뵙는 분이다. "자매님, 천 원만 주세요." 선뜻 다가와서 정확한 액수를 말씀하시는 여자 분이다. 키가 큼직한데 모자로 코디도 하시고 고운 빛 치마를 입곤 하시는 멋쟁이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해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U사의 내복이다. (내가 추위를 타는 한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주말 근무에 야근에 철야까지 하면서 올해 크리스마스는 이것도 감지덕지였지만, 충분했다. 팍팍했던 생활에 잠시나마 크리스마스가 반짝 빛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크리스마스를 맞을 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예상하지 못했던 분들께 뻔한 선물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 누룽지는 진짜 산타클로스의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불과 직접 투탁 거린 쌀 알 들이 누룽지다. 어찌나 열심히 버티어 냈는지 누렇게 뜬 얼굴에, 씹노라치면 와그작 아그작 꼭꼭 힘을 주어야 할 만큼 무뚝뚝하다. 하지만 물을 부어 끓이면 금방 풀어져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낸다. 게다가 쌀밥은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구수함, 뜨끈함,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사느라고 자꾸 딱딱해지는 마음이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따뜻한 속내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크리스마스인 것 같다. 그래서 누룽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꽤 잘 어울린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딱딱해진 서로를 부들부들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구수하고 따뜻한 일이지 맛보라는 의미로.
몇십 년 앞당겨 받았던 아주 맛있는 선물을 떠올리며,
(늦었지만)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