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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Kim Dec 20. 2020

"시작도 하기 전에 졌다"

#1. 열패감과 자존감에 대하여

                                                                                                                                                                                                                                      




나는 원하지만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에게서 시기심과 질투가 인다. 그들의 빛나는 눈빛과 맑은 목소리에서 조금이라도 어두운 구석은 없는지 찾아본다.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책에서 본 문장들을 떠올려 보지만 나에게 집중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매일매일 이루어나가는 것을 나는 지금도 못하고 앞으로도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데 나는 하위그룹에서 겨우 예선 통과를 위해 기를 쓰는 느낌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척척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열패감을 느낀다. 그들의 남다른 노력과 고생, 그리고 희생을 알게 되면 더욱 내가 루저가 된 느낌에 빠져 허우적 된다.

그것이 내가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게 된 계기이고 남이 땅 사면 배 아픈 이유다. 그것이 또한 내가 성공해야 한다 생각했던 이유다. 성공하고 꿈을 이루면 멋지고 배울게 많은 그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 내 못난 모습이 드러날까 못 다가간 그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내 마음의 찌꺼기를 밀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들을 축하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성공하고 꿈을 이루면 정말 이 지긋한 열패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루고 나면 얼마간은 만족하며 살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며 열패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반복이다. 또다시 이루어야 하고 또다시 괴롭다.

글쓰기 스터디를 할 때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서 알아보았었다. 이 감정은 생존에 당연한 감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없애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남들에게 진심을 담아 축하하지 못하는 이 열등감을, 나의 마음속 못난이를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내 마음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의 이런 마음은 중3 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국어 내신 점수가 90점을 넘지 못해 과학고 원서를 넣지 못했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은 모두 과학고에 가고 몇은 좋은 고등학교에 갔지만 나는 일반고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라도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이돌과 판타지/무협 소설에 빠져 공부를 안 했다. 결과적으로 대학은 그럭저럭 갔지만 과학고에 간 친구들과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찬가지. 대학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한 나는 취업이 잘 안되었고 6개월의 백수 기간을 거쳐 중견기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내 동기들은 모두들 대기업에 입사했다. 동기들은 소위 어딜 가도 떳떳이 말하며 모두가 알고 있는 인정받는 직장에 들어갔고 나는 못 들어갔다. 학점이 비록 낮을 지라도 나는 그 친구들과 내가 비슷하다 생각했다. 비슷한 동류의 사람인데 나는 못 하고 그들은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하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작은 원룸 전세에 살았고 모아 놓은 돈도 쥐꼬리만 했다.  하루하루 아무 생각 없이 직장 다니고 술 마시고 잤다. 동기 중 한 친구가 나이 서른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의대 편입을 해 35살에 인턴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아는 한 분은 20대에 대학 다니며 생활비, 학비를 벌어 힘들게 졸업하고 졸업 후에도 열심히 돈을 모으고 공부를 해 지금은 안정된 직장, 집 두세 채를 소유하고 여유롭게 산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도 어리다.


나는 그동안 뭐 했나 하는 생각이 온몸을 때렸다. 나는 노력 하나 안 하고 그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었다. 그들과 내가 다른 게 없는데 그들은 이루어냈다고 시기하고 있었다. 나는 운도 없고 집안과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 거라고 원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부러워만 한다고 게으른 내 습성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들을 마음 깊이 축하하지 못하는 못난 나를 보며 부끄러워 아닌 척했다. 이건 자존감을 깎는 순환선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모임에서 자존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의 자존감과 성장 과정 이야기를 들었다. 자존감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 노력하고 성취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가 쌓이며 형성됨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유대와 학창 시절에 자존감이 확립되면 그 자존감은 더 이상 쌓을 수 없는 요지부동인 줄 알았다. 성인이 된 후에 자존감을 다시 쌓는 건 매우 힘들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금 내가 열패감에 시달리고 자존감이 이런 상황인 것은 성인이 된 후 쌓아 올린 노력과 성취가 빈약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은 부모의 믿음과 사랑으로 자존감이 형성된다. 성인이 되어서는 노력과 도전을 통해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면서 자존감이 굳건해진다. 그러나 나는 게으름으로 도피하고 무기력으로 도망치며 나를 깎아내렸다. 그래서 30대인 지금도 시기 질투에 마음이 부글부글하는 것일 테지.


이 열패감과 자존감에 대한 글의 결론은 뻔하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노력하고 성취하라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런 결론을 위해 이번 글을 쓴 건 아니다. 그저 나는, 이 지긋지긋한 열패감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의 성공을 마음껏, 편안히, 거리낌 없이 축하하고 싶다. 그래서 내 못난 마음을 끄적거려보았고, 그 결론에 나의 자존감이 걸렸다. 이놈의 자존감은 어디에서나 걸리적거린다. 걸리적거린다는 것은 결국 알아봐 달라는 신호일 것이다. 하나하나 나에 대한 신뢰를 쌓아 올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야 된다는 말일 것이다.


엄마가 되어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어쩌면 이러한 자존감 공부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부디 이 공부의 끝에는 해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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