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서 ‘천국의 자동차’를 선물 받기는 했지만, 막상 이 물건을 끌고 거리로 나설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자전거 도로는 더 말할 필요 없이 훌륭하지만, 내 운전 솜씨는 초보 수준인 데다가, 내가 타던 미니벨로와는 비교가 안되게 크고, 높고, 무거운 자전거가 나에겐 버겁게만 느껴졌다.
온통 벽돌로 깔린 바닥에 엎어져서 코라도 깨지면 나머지 여행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부터 났다. 하지만 딸에게 짐이 될 수는 없다는 비장함과 함께, 이 도시를 제대로 훑어보자면 자전거야 말로 필수품이기에 어떻게든 용기를 내야 했다.
비록 천국의 자동차를 몰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잠시 들긴 했지만,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운하를 따라 한 바퀴를 돌아보니, 머지않은 곳에서 천국의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전거는 이들의 필수품이자 거의 신체의 일부처럼 보인다. 짐을 잔뜩 싣고, 아이를 둘씩이나 태우고, 연인끼리 나란히 손을 잡고, 한 손은 핸들 다른 한 손으로는 온갖 용무를 보면서도 모두가 어쩌면 그렇게 유연하고도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지, 거의 환상적이다. 그만큼 자전거 도로 사정도 훌륭해서, 이 나라에서는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타는 사람이 어디서나 최우선이다.
'투르 드 프랑스' 전야제 행사가 거리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 곳 위트레흐트는 바로 이번 주말 시작하는 이 자전거 경주대회의 출발지로 정해져서, 참가 선수들을 환영하는 사전 행사와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투르 드 프랑스' 대회는 매년 7월, 3주간 열리는 프로 도로 사이클 경기로, 프랑스와 인접 국가를 일주하는 장거리 구간 경기로 이루어진다. 전통적으로 결승점은 프랑스 샹젤리제가 되지만, 첫 번째 구간 경기가 열리는 곳은 특히 영예로운 곳이 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네덜란드는 이런 영예를 얻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곳이다.
돔 타워(Dom Tower)와 얀 스카 호프(Janskerkhof) 버스 정류장 부근, 꽃시장과 많은 레스토랑이 있는 누데(Neude) 거리를 중심으로 팡파르와 음악, 거리 공연이 펼쳐지고, 각종 음료와 토속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거리는 인파로 넘쳐 났고 모든 것이 축제 분위기, 그 자체이다. 우리도 인파에 휩쓸려, 거리에서 하링 (Haring-청어 초절임)과 그리스식 케밥을 사 먹으며,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유유자적 거닐어 보았다.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던 노부부, 사진 찍는 뒤 배경에서 우리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폼을 잡던 젊은이들, 연인들, 어린아이를 손에 잡은 가족들… 모두 친절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중에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큰 키다. 지구 상에서 가장 키가 큰 남성 종족이 네덜란드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막상 와서 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말 큰 키가 인상적이다. 그냥 큰 정도가 아니고 정말 크다. 대체 이들에게 어떤 인류 진화학적, 혹은 생태학적 배경과 요구가 있었기에 이렇게 엄청나게 클 수 있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축제 인파 속의 나와 딸은 그들에게는 어쩌면 얼떨결에 거인 국 나라로 걸어 들어온 걸리버 같은 모습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왼 쪽은 찻길, 오른쪽은 자전거 길
트루드 프랑스 대회의 서막이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선수들을 응원하며 위트레흐트 시민들은 거리에서 온전히 하루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