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 young Nov 18. 2015

29. 기다려! 영국~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영국’ 하면 내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보다  독특한 영국식 억양이다. 혀를 말아 빠르게 굴려야 하는 미국식 영어 발음에 비해 영국식 발음은 매우 섹시하면서도 아름답고, 품위 있게 들린다. 순전히 그 억양 때문에도 나에게는 영국 영화가 미국 영화보다 뭔가 더 격조 있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안타까운 것은, 무척 따라 해 보고 싶은데 절대 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무조건 굴리라고 배운 미국식 영어 발음이 혀에 배어버린 탓이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는 말처럼, 영국 사람은 모두 다 신사일 것 같은 선입견도 있다. 따라서 다른 서양 남자들보다 영국 남자가 더 멋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다. 아무튼, 이번 유럽 여행길엔 영국의 수도 런던 만이라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차에, 결국 단독 여행을 감행하기로 결심을 한 것은 나와 딸 사이에 난기류가 형성되어 가던 무렵이다. 이 곳에 온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던 시점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라도, 하물며 죽고 못 사는 연인 사이라도, 어차피 혼자서 맞서야 할 각자의 고민을  끌어안은 채 한 공간에서 부딪치다 보면, 지치고 서로에게도  피곤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사이일수록 어쩌면 더 힘이 들 수도 있다.

그 난해한 기류가 우리를 집어삼키기 전에, 딸에게도, 나에게도, 잠시 떨어져 홀로 지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준비에 착수했다. 딸에게는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숙소의 짐 정리를 마치고, 다음 2차 원정의 거점이 될 로테르담으로 떠날 만반의 대비를 하라는 미션을 남긴 채.


도서관에서의 ‘열공’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 1차 원정에서 난 대장으로서 진두지휘만 할 뿐 대부분 딸이  맡아했던 숙소 예약이며 교통편까지 이제 모두 다 내 소관이 되었다.

각자의 과제를 안고 딸과 함께 다시 찾은 대학 도서관. 내 여행이긴 하지만, 그리고 자신의 코가 석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지 않는 딸이 내심 서운했다. 마치 나를 자립심 강한 아이로 키우려는 단호한 엄마 같다는 느낌이랄까?

지난 원정 기간 동안 나름 훈수를 두며 어깨너머로 배운 도둑질을 무기로 도전해 보는  수밖에. 결국 민박집을 찾아 예약 신청을 보내고 답장을 받는다든지, 교통지도를 다운받아 핸드폰에 저장을 해 놓는다든지 하는 고 난이도의 미션까지 어느덧 혼자 힘으로 척척 해내고 보니 뿌듯함이 물 밀 듯 밀려온다. 이래서 아이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


오늘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1.    암스테르담 센트랄 역에서 런던의 빅토리아 역까지 가는 메가 버스(Mega Bus)를 예약함.  일단 비행기 요금보다 저렴하고, 귀의 통증 같은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기차보다 덜 번거롭고, 졸면서 마냥 앉아있기만 하면 밤 새 영국까지 데려다준다니 땡큐! 총 여행 시간은 10시간 30분 예상. ’오케이!’

Amsterdam, Zeeburg P&R Coach Park at Zuiderzeeweg 9:00 pm. -> London Victoria Coach Station 7:30 am.

2.    민박할 집을 예약함. 런던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이라 비용이 저렴한 편이며, 시내 중심가까지  연결되는 버스와 기차역이 바로 집 앞에 있으므로 교통이 편리함. 무엇보다 주인 남자가 나의 영국 남자에 대한 선입견을 만족시키는 호남형이므로 망설임 없이 예약함. ’므흣~’

Victoria Coach Station -> Tube로 LiverpoolStreet (Tube -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튜브’로 부르는 모양임) -> Coverground로 Stocknewington까지 (Coverground – 영국에서는 기차를 ‘커버 그라운드’로 부르는 모양임). ’허걱!’

3.    런던 “여왕폐하의 극장 (Her Majesty's Theater)”에서 공연하는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티켓을 예약함. 몇 가지 옵션 중에 비싼 발코니 석이 마침 ‘Best Offer’로 저렴한 가격에 나와 있어서 이 자리를 예약함. 영국 영화에 등장하는 귀족 부인처럼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발코니에서 도도하게 내려다볼 거임. ‘오~예!’

주소는 London SWIY 4QR, Her Majesty Theater. 트라팔가 광장 근처.

4.    런던 시내 지도를 확보함. 주요 지하철 노선과 교통편 (역에서 민박집까지, 민박집에서 시내 모 처까지 등)을 캡처해서 저장해 둠. 런던에 도착하면 역에서 환전을 한 뒤, 바로 런던 시내의 주요 구간을 자유로 이용할 수 있다는 교통카드 ”오이스터 카드 (Oyster Card)”를 구입할 예정임. ‘야호!’

5.    페이스북 사진첩 만들기에 도전. 그간에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사진첩에 담고, 런던 여행의 무용담을 또 하나의 사진첩으로 엮을 예정임. 근근이, 간신히 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시대에 주어 진 문명의 이기를 나도 사용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기쁘고 좋은 일!


오늘도 위트레흐트 대학 도서관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이제 칼 퇴근, 아니 칼 퇴장할 시간이다.

기다려! 영국~



매거진의 이전글 28. 헤리슨 포드와 브레드 피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