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을 앞두고 내려다본 모스크바의 모습은 구 소련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온통 회색 빛일 거라는 구태의연한 나의 상상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것이었다.
초록. 초록 그 자체였다.
초록의 숲에 앙증맞게, 옹기종기, 또는 드문드문 자리한 빨간 지붕의 집들 풍경이 정말 예뻤다.
잠시 인사를 나눈 뒤 친절하게 기내식을 챙겨주던 옆 자리에 앉은 러시아 여자에게 “당신 나라 정말 아름답네요. 완전 초록이에요.”라고 말해 주니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세 시간 동안 이곳에서 환승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 모스크바 공항엔 간간이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느긋하게 창 밖의 비를 감상하며 부족한 잠을 청했다. 언젠가 미국 시애틀 공항에서처럼 비행기를 놓치는 황당한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보딩 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춰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 귀와의 사투.
예상하고 또 나름 준비도 했지만, 난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는데, 모스크바에서 암스테르담을 향해 착륙을 시도하는 순간부터 내 귀는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메스꺼움, 어지러움, 통증, 먹먹함, 비행기 엔진 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이명.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순간 이 비행기 안에 나와 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서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처럼 그저 쥐 죽은 듯,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흘리며, 혼자만의 아픔을 감내한 누군가가 또 있었을까?
다시 한번 맞닥뜨린 생각은, 결국 모두가 혼자라는 것이다. 모든 삶의 고통도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 허약하기만 한 병 덩어리인 나의 몸도 내가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것.
난 남아 있는 나의 정신력을 동원해 내 몸에게 계속 말을 걸어준다.
'넌 이겨낼 수 있어.'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하던 즈음부터 어린 아기가 울고 있었다. 말은 못 하지만 분명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 그저 안쓰러운 마음밖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던 아기의 부모는 비행기가 착륙하며 아기가 울음을 멈추자 아기에게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주변 사람들 속에서도 박수 소리가 펴져 나왔다. 그 박수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