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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Dec 14. 2015

35. 이사하는 날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런던을 떠나던 그날 밤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그다음 날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인 위트레흐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국, 3박 6일의 여행이 된 셈인가?  세상에...

위트레흐트로 가기 위해 굳이 암스테르담까지 올라갈 필요 없이, 1시간 일찍 로테르담에서 내려 바로 위트레흐트로 가는 기차를 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까지는 매우 똘똘한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는데, 마침 플렛홈에서 막 출발하려는 위트레흐트행 기차를 반가운 마음에 덥석 올라타고 보니, 직행이 아닌 암스테르담과 스키폴 공항까지 거쳐 가는 완행 기차를 타 버리고 말았던 것.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뛰어내릴 수도 없는 처지이고, 완전히 체념을 해 버리고 마음을 편안히 한 다음, 그 상태로 쏟아지는 졸음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싶었으나… 바로 내 앞 쪽에서 마약에 취한 남자와 경찰관들의 실랑이가 한 시간 가까이 벌어지고 있으니 마음 놓고 잠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런던 여행의 시작과 끝은 대략, ‘우왕좌왕’과 ‘비몽사몽’ 두 마디로 정리될  듯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내가 얻은 인생의 교훈은 '부지기수'이지만.


거의 하링(생선 초절임) 수준이 되어 도착한 숙소.

런던으로 떠나기 전 딸에게 주고 간 미션은 전혀 진척된 기미가 없다 (딸은 서랍 정리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다음 날이면 이 숙소를 떠나 로테르담으로 이사를 가는 날인데, 옷장의 옷들도 그대로, 침대 밑의 박스들도 그대로, 버려야 할 쓰레기들도 그대로... 서울로 짐을 부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러는 딸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마는, 나 또한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야 했다.

결국, 5일간 로테르담에서 필요한 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일단 딸의 동료 숙소 지하실에 보관하기로 결정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짐 싸기는 다음 날 오후까지 이어졌다.

구석구석 청소까지 말끔히 마치고 보니, 어느새 정이 든 이 공간이 떠나기 너무 아쉬운 공간으로 느껴진다. 2 년 간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딸은 얼마나 만감이 교차할까 싶었다.


모든 짐을 지하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이삿짐센터의 도움이 필요했다. 딸이 알아 둔 이삿짐센터의 직원이 대형 탑차를 몰고 달려와 주었다. 3층의 숙소에서 동료의 지하실까지 긴밀한 수송작전이 펼쳐지고, 일을 모두 마치고 떠나면서 그가 하는 말인즉슨, 그날 저녁 여자 친구를 만나러 로테르담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미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나머지 짐을 들고 역으로 향할 기운도 없는 바로 이런 때, 아줌마들의 밑도 끝도 없는 용기는 빛을 발한다. 같은 방향이니 함께 데려다 달라는 나의 청에 그는 순순히 허락을 하고, 바로 픽업하러 올 테니 쉬고 있으라는 것이다. 찻길에  내려서지 않고도 단 번에 ‘히치하이킹’에 성공한 셈. 난 마땅히 잡아야 할 찬스를 잡은 것뿐이다.


마침내, 로테르담으로 떠나는 그의 차에 짐을 싣고 자동차에 올라 탄 우리.  

악당들이 은행 금고 털이에 성공한 뒤 대기 중인 차에 올라, 한 건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다. 딸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창 밖으로 지는 붉은 석양보다 더 붉은 ‘악당’들의 미소'를 서로  주고받으며, 나와 딸은 그제야 한 바탕 웃는다.

"우리 한 탕 한 거야!"


다리 뻗고 누울 공간이 되어 준 스위트 룸도,

식당 겸 서재가 되어 주었던 빈 방도,

딸이 첫 해를 지냈던 다락방 창가와 무리 지어 날고 있던 새들도,

김 밥 한 줄 말기도 힘들 만큼 열악했던 부엌도,

어둠이 내리던 골목길도,

집 앞을 흐르던 운하도,

자전거와 사람들로 활기찼던 그 거리도,

운치 가득한 동굴 속 맥주 바도,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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