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 young Dec 21. 2015

36. 환상이 현실이 되는 도시, 로테르담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우리는 마침내 제2차 원정을 모의할 마지막 거점지인 로테르담(Rotterdam)에 입성했다.

딸이 나흘간 워크숍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이 도시를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따로, 또 같이 이 도시를 즐기며, 여행 속의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로테르담은 암스테르담에 이어 네덜란드 제2의 상업도시이자 항구도시이다. "현대 건축의 경연장"이라 불릴 만큼 독특한 건물이 많은 곳으로, 또한 예술적 감성이 충만한 도시로 알려져 있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로테르담의 중심부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폭격으로 폐허로 변한 뒤, 말 그대로 잿더미에서 신도시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는데, 폐허를 단순히 재건하는 수준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실험 무대로 삼아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 하에 만들어진 도시라고 한다.

우선, 마스 강(River Maas)을 따라 수 변 공간과 항구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 유람선이 다니는 우리의 한강이나 파리의 센 강 등과는 차원이 좀 다른 느낌이다. 주변에 항만 물류시설과 산업 단지를 끼고 있는 이 강은 북해로  이어지며 도시 발전과 산업 발전의 혈맥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즐기는 강'을 넘어서 '일하는 강'이라고나 할까?

또한, 세계 각지의 이름난 건축가들이 참여한 다양한 건축물들을 보면 건물이기 이전에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설계 단계의 건축에서 가장 중시된 요소로 건축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독창성’이 강조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로테르담에서는 비슷한 건물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건물들과 미술관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는 시내 지도를 구했다.

건축물 순례와 미술관 관람이 하루 일과인 나흘을 보낸다는 것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운임에 틀림없다.

환상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는 자전거 도로도 마다하고, 난 걸어서 이도시를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거리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듯 그렇게 천천히 걸어 볼 생각으로.

숙소 바로 근처의 로테르담 블락(Blaak) 역을 중심으로, 유명한 "큐브 하우스"와 "펜슬 하우스", "마르크탈 (Markthal)"을 시작으로,  강바람을 맞으며 마스 강변을 따라 걷다가, 에라스뮈스 다리를 건너 로테르담의 맨해튼이라 일컫는 "콥 반 주드 (KOP VAN ZUID)" 지역까지 순례는 이어졌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건물들이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지는 현장에 서고 보니, 무엇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소중히 여기고, 부추기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이들의 ‘힘’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하고 부러울 뿐이다.

이 도시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상하라! 이루어지리라!’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마르크탈에 다시 들렀다. 요리를 하는 일은 즐거워도 장보는 일은 귀찮아하는 나이지만, 이 곳만큼은 매일 와도 즐겁고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것이, 이것이 사람을 담는 건축의 힘이 아닐까 싶다.

빵과 올리브, 치즈, 생선 튀김, 과일과 견과류를 골고루 골랐다. 딸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호가든과 무 알코올 바바리아 맥주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테르담 입성을 자축하기 "위하여!"



일명 “큐브 하우스”와 그 뒤로 보이는 “펜슬 하우스” (위). 이 흥미로운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 보니, ‘정형’에 길들여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기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런 집에 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외관만큼이나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건축가 피트 블롬(Piet Blom)이 설계한 이 주택 단지에 원래 붙인 이름은 “블락(Blaak)의 숲”이었다고 한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콘크리트 기둥 위에 주택을 세우고 그것이 모여 숲을 이루는 형태를 의도한 것이다


로테르담의 건축사무소 MVRDV가 설계, 2014년 개장한 마르크탈 (Markthal). 거대한 아치형 건물로 주상복합 아파트와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장 내부는 강철선이 그물 구조를 이룬 강화유리로 마감이 되어 있어 개방감은 극대화하면서 내부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리벽에 비친 주변 건물들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딸의 말처럼 거대한 비눗방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듯~ 말듯한 그대~’.

이 회사는 한국에서 서울역 고가 공원화 설계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하다.

마르크탈에 들어서면 천정과 건물 내벽에 그려진 대형 벽화가 방문객을 반겨준다. '오! 행복한  마음~'.

미술가 아르노 쿠넌(Arno Coenen)과 이리스 로스캄(Iris Roskam)의 ”풍요의 뿔(Cornucopia)”이라는 작품으로,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의 이미지를 형상화함과 동시에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대가들의 작품을 참조한 것이라고 한다.

마르크탈의 상점가 - 구매욕 제로인 나 같은 사람의 호기심마저 완전히  사로잡은 곳. 보는 재미 '만땅'에 엔도르핀 '팡팡'.

샤우브르그 거리(Schouwburgplein)의 댄스 스퀘어(Dance Square). 붉은 사마귀 모양의 조명등이 이색적이다. 로테르담 항구의 타워크레인에서 영감을 얻어 형상화한 것으로, 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투입하는 동전에 의해 조작되고 움직인다고 한다.(좌)

광장을  둘러싼 제 각각의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천편일률적인 회색 건물들에 길들여진 나에게는 정신 사나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무난하고,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것들을 지양하고, ‘꼴리는 데로’ 존재할 자유를 외치고 있는 듯하다.(우)

윌리엄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예술학교.

거리를 걷다 보면 이렇듯 멈춰 서서 잠시 사색을 하게 되는 네온사인 글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I have to change to stay the same.”


“백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에라스뮈스 다리” 너머, 서울로 치자면 여의도 같은 느낌이 드는 콥 반 주드 (KOP VAN ZUID) 지역. 로테르담의 상징적인 건물인 “드 로테르담”을 비롯해서 현대적인 건물들이 위용을 뽐내는 곳이다.

'콥 반 주드' 지역의 이색 건물들 - 경사진 건물의 입면을 기둥 하나가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의 KPN 빌딩과 “레드 애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주상복합 건물

건물 외벽이 그대로 한 폭의 재미있는 예술 작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5. 이사하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