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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Dec 26. 2015

37. 뮤지움 파크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로테르담 중심부에는 뮤지움 파크(Museum park)를 중심으로 대여섯 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숲을 이루고 있다. 로테르담에 머무는 동안 이 공원은 나의 소풍 장소이자 출근지가 되었다. 미술관을 돌아보다가 지치면 카페에 앉아 쉬고, 지루해지면 공원 풀밭에서 뒹굴며 책을 읽고, 도시락도 까먹고, 2차 원정을 위한 계획도 구상하면서, 혼자여서 외롭지만 혼자이기에 가능한 자유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15세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작품을 아우르며, 고흐, 렘브란트, 루벤스, 고야, 모네, 칸딘스키, 달리 등과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보이만스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네덜란드 건축연구소(NAI)와 함께 건축과 디자인 관련 전시관이 있는 헷 뉴 인스티튜트(Het Nieuwe Instituut), 건축물 그 자체로도 유명한 쿤스탈 미술관(Kunstal Rotterdam)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산책은 팍팍한 일상에 삶의 영감을  불어넣는 기회이지만, 사실 고단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을 방문하면 의례 그 도시의 미술관 내지 박물관부터 찾아보게 되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책장에는 바로크 시대로부터 르네상스, 근대에 이르는 유명한 미술작품들을 시대별로 묶어 놓은 대형 화집이 꽂혀 있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난 이 책들을 그림책 보듯 즐겨 꺼내 보곤 했다. 특별한 예술적 감성에서 라기보다는, 그림 속의 많은 주인공들이 나체로 그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아이의 은밀한 호기심이 발동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덕분에 난 중 고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꽤 유식한(?) 학생이 될 수 있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술관으로 달려가는, 그나마 어설픈 미술 애호가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뒤늦게 건축 분야의 끄트머리 일을 붙잡고 하게 된 것도, 어쩌면 어릴 적 아버지가 제도판 위에서 그려 내시던 건축 평면도와 투시도가 요술처럼 실제 건축물로 실현되는 모습에 마음이 사로잡혔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말하자면 운명처럼…


뮤지엄 파크는 바로 옆의 헷 파크 (Het Park)로 이어져 있는데,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매우 넓은 공원이다.

드넓고도 고요한 초록의 공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느끼며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왜 운명에 조금 더 일찍 맞닥뜨리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항상 비껴가는 게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운명을 찾아 나서기는커녕 찾아오는 운명 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게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보이만스 미술관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고흐가 그린 초상화.

아름답고 신비로운 초록의 톤과 묘한 대비를 이루는 주인공의 심각한 표정에서 내가 본 것은, 권태, 불만, 그리고 불안.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달리(Salvador Dali)의 그림 “A couple with their heads full of clouds”.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그래서 조금은 기괴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기억하고 있었던 달리. 이 곳에서 오히려 그는 이상주의자, 꿈을 꾸는 자, 꿈을 현실로 표현하려는 혁명가로 다가왔다. ‘구름으로 가득한’ 내  머릿속을 떠올리며, 작품 속의 여자와 내가  오버랩되는 순간.

보이만스 뮤지움 입구에서 만나는 조형물

 입구의 관람객 옷 보관소(cloakroom). 자신의 옷이 옷걸이에 걸려 그대로 대형 작품이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작은 조형물들은 모두... 추잉검(Chewing Gum)

뮤지움 파크가 훤히 내다보이는 카페 espresso bar. 커피맛은 별로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무언가 '사치스러운 맛', 그것으로 족하다.

뉴 인스티튜트(Het Nieuwe Instituut) 전경과 중앙 홀

뉴 인스티튜트와 함께 관람이 가능한 Sonneveld House.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어 근대 네덜란드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집이자 박물관. 남의 집 구경만큼 재미있는 일도 흔치 않다.

세계적인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쿤스탈 미술관. 외관은 심플한 박스 형태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오디토리움과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된 간들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이 날 오디토리움에서는 델프트(Delft) 공대 건축과 학생들의 건축모형 150여 개가 전시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설계한 쿤스탈의 미래 모형들이다

Het Park. 자연은 항상 옳다. 그리고 언제나 좋다.

여행 속의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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