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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Dec 30. 2015

38.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이 세상에 자연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믿음이다.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았지만, 그 어떤 예술 작품도, 아무리 멋진 건축물도 자연 그대로의 자연에 비길만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로테르담에 머문 닷새 중 하루 시간을 내어, 한 시간여 거리의 브레다(Breda)를 방문했다. 이름처럼 예쁜 도시였다.

브레다의 보봐인(Bouvigne) 정원을 거닐다가 우연히 나의 시야에 들어온 숲 속의 노부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 왜 불현듯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그 노래 말이 떠올랐을까?

자연 속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는 두 사람, 한눈에 보아도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도시락을 드시고 계신 걸까 싶어서 다가가 보니, 뜻 밖에도 나무 탁자에 나란히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계셨다.

두 사람의 말소리는 들릴 듯 말 듯 따뜻하고도 고요했고, 그들의 몸짓은 마치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나긋나긋했다. 삶의 노고로 깃털처럼 가벼워진 모습…


부부로 함께  살아온 오랜 시간이 공기로 전해지며 그대로 자연의 풍경 같았던 두 사람. 난 노부부의 곁에서 맴을 돌다가 결국 말을 붙였다.

“두 분 모습 너무 아름다우세요. 제가 사진을 좀 찍어도 괜찮을까요?” 아름다운 풍경에 이끌리듯 이렇게 다가갔다.

“그래요..” 할머니는 웃으시며 할아버지께 이 돌발상황을 설명하셨다. 칭찬에 서툰 듯한 겸손하고 멋쩍은 노인의 미소. 오랜 세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주름 진 얼굴. 인생의 풍파를 함께 헤치며 서로 감싸며 살아온 것이 분명히 느껴지는 다정한 노부부. 이 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은 없을 거란 생각이 진심으로 드는 순간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도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느라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또 맴을 돌고 있는 나를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손짓으로 부르셨다. 무언가 생각 나신 듯, 주섬주섬 연필을 꺼내서 메일 주소를 정성 들여 한 자 한 자 적으신다.

“사진, 이 메일로 보내줘요.”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서, 메일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뜻 밖에 고마운 제안이었다.

내친김에 나는 한 발 더 다가갔다. “네. 꼭 보내드릴게요. 저하고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 함께 보내 드릴게요.”

환하게 웃으시며 선뜻 같이 찍자고 하신다.

“이렇게 하고.. 할아버지가 여기를 누르시는 거예요. 자, 하나, 둘, 셋!”

난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끼어서 셀카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께서 종이 위에 꼭꼭  눌러쓰신 이 메일 주소를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진심으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살아있다는 것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끼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분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떠오르게 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내가 두 분 사이에 끼어서 이렇게 다정히 찍은 사진이 몇 장이나 될까? 살아 계셔서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더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피에트 씨 부부에게 메일을 보냈다.



브레다의 베긴회 수녀원. 이렇게 예쁘게 창가를 꾸민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서성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수녀님이 나오시며 인사를 건네신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베긴회 수녀원

보봐인 정원(Bouvigne Breda) 입구. 입구에서부터 흥미로운 조각들이 눈길을 끈다.

보봐인 케슬(Kasteel Bouvigne)

보봐인 정원에서 만난 피에타 씨 부부.

브레다 대성당 (Grote Kerk Breda)

브레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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