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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Jan 05. 2016

39. 렌터카로 "Go, go!"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우리의 2차 원정, 즉 역사적인 북유럽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이다.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미션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위트레흐트 숙소 근처 지하실에 맡겨 두었던 많은 짐들을 어떻게든 정리해서 여행 짐을 꾸려야 하고, 다음으로는 딸이 애를 써서 인터넷으로 찜해둔 렌터카를 픽업하기 위해 렌터카 사무실을 방문하는 것이다.


좁은 지하실에서 서울로 부쳐야 할 짐과 다른 장소로 옮겨서 보관해야 할 짐, 그리고 3주 간의 북유럽 여행에 필요한 짐을 각각 분류하고, 부치고, 꾸리는 일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오후까지 이어진 짐과의 사투 끝에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여행 시작도 전에 탈진한 기분.

다음으로, 차를 빌리기 위해 각종 보험 옵션을 꼼꼼히 살피고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는데, 사실 이런 일은 누가 좀 대신해 주었으면 싶은 골치 아픈 선택 중의 하나이다.

모든 불행의 상황을 예상해서 추가로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인지, 사고를 내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사고는 맹세한다고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렌트 비용에 포함되어 있는 기본 최소 비용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판단해서 어쨌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결국, 자동차 풀 커버 옵션에 직원의 조언대로 약간의 비용을 더 지불해서 차량 유리 보험을 추가했다. 풀 커버에 유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건 좀 불만스러웠지만, 어쨌든 차에 대해서 만큼은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홀가분해진 기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차량 도난 보험은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라고 권하는 개인상해 보험도 들지 않았다.

무식한 발상은 이렇다. 차량 도난 보험은 추가 비용이 가장 비싼 옵션인데, 치안이 비교적 좋은 북유럽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굳이 불행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는 것. 차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여행할 기분도 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한편, 몸을 다치면 여행은 거기서 끝, 죽으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 보험료 보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 끝.

나름 고민 끝에 내린 우리의 판단이지만, 사실 이건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냥 배팅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차는 다쳐도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은 절대 다치면 안 된다는 강력한 신념이 절대 다치거나 죽는 일은 없을 거라는 강력한 믿음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논리’ 보다는 ‘감’에 기대고 싶은 순간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좋은 결정이 될지 나쁜 결정이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한 달 내내  대중교통 노선과 지도와의 씨름에 지친 터라, 차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발에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원하는 바로 그 지점까지 데려다줄 것이라는 기대에 마냥 부풀었다. 익숙하지 않은 렌터카를 몰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기대가 훨씬 앞섰다.


2차 원정의 작전회의 결과는  첫날 독일의 브레멘(Bremen)까지 가서 숙소를 정하는 것이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예약하려 했던 브레멘의 숙소는커녕 두 번째 옵션이었던 암스테르담 방파제 너머의 캠핑장에도 다다르지 못한 채 예약 마감 시간인 밤 9시를 넘기고 말았다. 애초부터 무리한 계획이었다.

여행 첫날, 결국 방파제 위에서 북해의 찬 바람을 맞으며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으니, 대략 난감. 딸은 딸대로 의기소침해진 모습이었다.


전사들이 전의를 상실하면 싸움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내거나 약해지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추슬렀다. 그리고 방파제 위에서 심기일전하여 다시 한번 무식한 결정을 내렸다.

‘그래, 결심했어! 계속 북쪽으로, 무조건 앞으로 가는 거야!’. 차도 생겼겠다 멈춰 설 이유가 없다고 호기를 부린 셈이다. 일단 달려 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뭐가 됐든 기분은 좋아졌다.

"고고 씽~"



북해와 네덜란드의 에이설호(Ijsselmeer)를 가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파제. 끝도 없이 길게 느껴지던 이 방파제 위를 달리며 딸과 나는 ‘총길이가 얼마나 될지 누가 더 가깝게 맞추나’ 내기를 했는데, 이후 확인해 본 결과 그 길이가 무려 30여 km에 달한다고. 누가 내기에 이겼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람은 찬데, 해는 저물어 가고, 수평선은 무심하다.

'그래, 결심했어! 앞으로 계속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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