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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Jan 10. 2016

40. 스칸디나비아 가기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스칸디나비아로 가는 길은 다사다난했다.

북해의 찬 바람을 맞으며 내린 무식한(그래서, 용감한) 결정으로 결국 그날 밤 독일 브레멘에 도착은 했으나, 첫날부터 ‘차숙’을 면치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차 안에서의 쪽 잠으로 꼴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우리는 날이 밝자마자 브레멘의  한 쇼핑센터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화장품 매장 가판대의 화장품 샘플들을 눈치껏 활용해서 화려한 변신을 시도했다. 딸이 아이라인과 쉐도우까지 그려 주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화장발’로 자신감은 급상승.

‘악당’의 변신은 무죄!


독일 국경을 들어서면서, 영어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물가는 다녀 본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싼  편인 데다가, 노르웨이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들은 터라 약 열흘 치 식량을 이 곳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주로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즉석식품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먹거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독일 맥주와 살라미, 소시지까지 비교적 싼 가격에 푸짐하게 장을 보고 나니 횡재라도 한 기분에 이미 배가 부르다.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그린 큰 그림은, 우선 덴마크의 북쪽 끝 히르찰스(Hirtshals)에서 배를 타고 노르웨이 남쪽 끝의 항구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데르센의 고향인 덴마크의 오덴세(Odense)를 들러 보고 싶다는 생각에 함부르크(Hamburg)에서 동쪽으로 기수를 돌인 뒤, 뤼베크(Lübeck)를 거쳐 푸트가르텐(Puttgarden)까지 거침없이 달리고 달렸다. 우리의 미래가 이처럼 푸른 초원을 달리듯 그렇게 시원스럽고 순탄할 것만 같은 기대로 한껏  부풀어서...

푸트가르텐에서 배를 타는 순간까지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거기서 오덴세를 가기 위해서는 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는 사실도, 함부르크에서 그대로 북진해서 배를 타지 않고도 오덴세를 갈 수 있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우리는 이 시행착오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엔 같은 시행착오를 안 해도 될 테니까. 우리는 같은 길을 두 번 가지는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가지 않은 길’을  찾아다닐 참이었으니까. 결국 우리는 오덴세를 눈 앞에 두고, 우드코빙 (RUDKØBING)이라는 덴마크의 작은 시골 섬마을에서 짐을 풀게 되었다.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이 캠핑장에 그나마 묵을 방이 있어 차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마음씨 좋게 생긴 주인아저씨가 과일과 빵까지 챙겨 주며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모든 피곤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다시 작전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덴세를 거쳐 바로 노르웨이로 들어가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2년 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정리하고 짐을 꾸리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시작된 여행인 데다가, 딸은 로테르담의 워크숍 결과를 정리해서 예술 잡지에 기사를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었다. 내 숙제는 아니지만, 나도 같이 뭔가 숙제를 못하고 있다는 기분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였다.

원기도 좀 회복하고, 덜어낼 짐을 덜어낸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떠나기 위해 이 섬마을에서 하루를 더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확인한 셈이다.

우리의 여행(인생)은 어딘가에 가능한 한 빨리 당도해야 하는 경주가 아니라는 것. 그 어디로 가는 길이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 숙제를 풀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 우리 여행(인생)의 의미는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는 것.



브레멘 시청사 옆, “그림” 형제의 고전 동화 “브레멘의 음악대” 동상 – 버림받은 당나귀와 개, 고양이, 수탉이 음악 대원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떠나는 모험 여행이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옛 도시 심장부에 위치한 성당과 장터. 르네상스식 문양과 고딕 양식이 융합된 건물 외관이 아름답다.

중세, 브레멘 등과 함께 ”한자동맹”의 맹주로 번성을 누린 뤼베크(Lübeck).

푸른 초원을 달리고  또 달려...

독일 푸트가르텐Puttgarden에서 덴마크로 향하는 Scandline을 타고... 오덴세가 있는 핀 섬으로 가기 위해 덴마크 Rødby에서 다시 페리를 갈아타고...

마침내 다다른 덴마크의 시골 섬마을, 우드코빙 RUDKØBING

여행 계획에 전혀 없었던 이 곳에서 우리는 이틀 밤을 지냈다. 여행이란,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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