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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Jan 18. 2016

41. 안데르센을 만나다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노르웨이로 가는 길에 꼭 들러 보고 싶었던 오덴세,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을 만나러 가는 길도 파란만장했다. 실은, 이 날로 우리의 여행은 끝날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내지 말기, 실망하지 말기, 포기하지 말기’로 스스로와 다짐한 것이 불과 엊그제였는데, 난 이 날 나에게 너무 화가 나고,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어 졌다.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사려 깊은 딸이 곁에 없었다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이틀을 잘 쉬고 오덴세로 출발하려던 바로 그 순간, 자동차 열쇠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항상 두던 가방 안에 열쇠가 없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멘붕’은 시작되었다.

출발에 앞서 차곡차곡 싸 두었던 짐이란 짐은 모두  끌어내어 밑바닥부터 옷 속까지 무려 세 번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차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묵었던 숙소의 방과 화장실, 부엌까지 수색의 범위를 넓히고, 급기야 아침에  다녀온 슈퍼마켓의 동선을 따라 물품 진열대는 물론 안내 데스크까지 두 번을 왕복하며 조용하던 동네를 들쑤셔 놨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다시 열쇠를 받으려면 최소한 3일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여행이 반 토막 나는구나 생각한 그 순간, 캠핑 장 주인아저씨가  전자레인지 바닥에서 기적처럼 열쇠를 찾아냈다.

그것이 어떻게 그 안으로 기어들어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다만, 그 이후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키홀더에 아예 큼직하게 파란색 비닐봉지를 매달아 두었는데, 노이로제 때문이었는지 파란색 봉지는 꿈속에 까지 등장해서 나를 괴롭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동화의 나라를 꿈꾸며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오덴세. 동심이고 뭐고, 한 바탕 소동을 벌이느라 십 년은 폭삭 늙어버린 기분을 추스르며 안데르센 동상 공원과 그의 생가로 지목되는 집, 그리고 박물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미운 오리 새끼”, “성냥 팔이 소녀”, “인어 공주”, “엄지 공주”’, 교과서에도 실렸던 기억이 있는 “벌거벗은 임금님” 등, 안데르센의 수많은 동화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 그때 그 시간의 감상들이 어느새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요즈음처럼 다양한 매스미디어인터넷의 혜택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외할머니 품 안에서 듣던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되는 전래 동화가 어린 나를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거의 유일한 문화 수단이었다.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하나만 더~, 하나만 더~"하며 할머니를 조르던 내 모습과,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어딘가에  이야기보따리를 매달고 있는 듯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할머니가, 그립기만 하다.

그 후,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접한 동화책이 안데르센의 동화였으리라. 할머니의  빈자리를 대신 따뜻하게 메워 준 고마운 할아버지였던 셈이다.


동화 작가로만 알았던 그가 시와 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고, 종이 오리기를 특히 잘했으며, 소년 시절 연기자가 되고 싶어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는 것,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동화작가로 이어진 성공,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얻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삶을 마감한 작가.. 어른대 어른으로 만난 인간 안데르센의 모습이다.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탄생했다는 뒷이야기처럼, 그의 동화에는 이렇듯  굴곡 많은 인생의 상당 부분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안데르센이 자신의 전기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작품은 모두 그가 살아온 인생사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인 셈이다.

만약에, 혹시나, 내가 동화를 쓰게 된다면, 먼저 ‘파란 봉지 귀신' 이야기를 써 볼 생각이다. 거기에는, ”내 생의 어느 날, 딸과 함께 한 덴마크의 한 시골마을에서의 오후”라는 주석이 달리게 되겠지.



안데르센 동상과 공원. 무척 큰 키에, 대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큰 발이 인상적이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안데르센의 종이 오리기 작품들

동화의 나라처럼 꾸며진 공원

오덴세 거리


소박하지만 깨끗하고 편안했던 쉼터에서 이틀을 일하고, 먹고, 쉬고, 자고... 그러나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출발을 앞두고, 세  번째 검열을 마친 짐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 우드코빙(RUDKØBING). 나의 첫 번째 동화책(그런 게 있다면)의 무대가 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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