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노트북을 꺼내 든다. 몇 자 적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다. 인생은 절대 정리가 되지 않지만, 그나마 엉킨 실타래의 한 끝을 찾아 글을 쓰다 보면 삶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딸이 끓여 주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사실 인터넷 세상에서 공간의 거리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떠나 온 곳에 나의 건재를 알리는 일이 편지나 국제전화가 아닌 실시간 화상 통화로 가능해진 세상. 이런 일상적인 모습이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것. 나와는 완전히 다른 청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파트너가 누구이든 소소한 일들로 부딪치게 마련이다. 대판 싸움으로까지 이어져 갈라서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딸과 이번 장기 여행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예상은 했던 일이다. 낯 선 공간을 처음으로 함께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고, 딸의 공간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이기도 한 이번 여행.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의 공간으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딸에게도 심난한 과제였으리라는 걸 안다.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건, 우리 둘의 감정 상태가 그 어느 때 보다 불안정하고 복잡하다는 데 있다. 장래의 진로 문제로 인생의 그 어느 시기보다 더 치열하게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딸과,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와 홀로서기라는 과제를 뒤늦게 짊어진 엄마.
이 둘의 조합은 누가 봐도 위태로운 여행의 예고편이라 할 만하다.
발단은 딸의 근황과 장래 계획을 묻는 서울과의 통화에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모두 불안하다. 더구나 이제 겨우 외국에서 공부를 끝마치고 귀국의 기로에 서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춘이라면…
모든 현실과 일상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그저 쉬고 싶다는 마음으로 날아온 나 또한 이 청춘의 짐을 함께 끌어 안기엔 벅찬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첨예한 감정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각자 마음을 끓여야 했다.
정해진 미래란 없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때론 자신감으로 용감하게, 때론 엉뚱하게, 그리고 가끔은 현명하게 내딛는 오늘의 한 걸음이 결국 나의 미래가 되고, 그렇게 살아 낸 인생이 내 인생의 정답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