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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yun Jan 26. 2024

여성의 남성화, 남성의 여성화

#강인한 여성성 #부드러운 남성성 #나이키 #해리 스타일스

전유물(專有物)
혼자 독차지하여 가지는 물건.


혼자 독차지하여 가지는 물건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지닌 '전유물'은 보편적으로 여성의 전유물, 남성의 전유물과 같이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와 함께 쓰이며, 그 집단만의 특징을 표현함으로써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무언의 경계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집단보다는 '나' 개인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이러한 사회적 무언의 경계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표기 하단 링크 참고)


# 강인한 여성성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여성의 마른 몸에 대한 우상화는 이 사회의 큰 문제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지적되어 왔습니다. 사실 미에 대한 개념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여성들에게 '마름'이라는 대상화된, 절대적인 가치만이 제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아름다움에 관한 이미지가 점점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축구 대한 고정관념을 깨었고, 실제로 많은 여성들을 풋살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사이렌:불의 섬'은 기존 남성들에게 요구되던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 단합을 여성들만의 강인함을 통해 담아내었습니다.


여성 24인이 직업군별로 6개의 팀을 이뤄 경쟁을 벌이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시리즈 '사이렌:불의 섬' ⓒ NETFLIX


또한 배역을 위해 만든 여배우들의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에, 여성 헬스 유튜버가 높은 무게 기구들을 소화해 내는 것에 대해 '멋지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처럼 크로스핏, 웨이트, 인터벌 트레이닝 등 많은 근력을 요하는 고강도의 운동들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근력운동 실천율 추이’ 데이터를 보면, 2010년 11.7%의 여성이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고 답한 후, 10년이 지난 2020년에는 17.0%로 눈에 띈 상승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그 폭이 더욱 크게 상승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한 성인의 근력운동실천율 추이 ⓒ 질병관리청



# 부드러운 남성성

이와 반대로 발레, 필라테스, 요가 등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운동에 최근 남성 회원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관찰 예능이나 유튜브 브이로그 등에서 남자 연예인들이 필라테스나 요가와 같은 운동들을 하는 모습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관찰예능을 통해 모닝 루틴으로 필라테스를 소개한 기리보이 ⓒ MBC


과거엔 몸을 크게 키우고 더 많은 근육을 얻는 '양'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적당한 양의 근육을 어떻게 '질'좋은 근육으로 만들겠냐에 그 관심이 옮겨간 것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이는 단순히 근육질의 크고 단단한 몸매를 통해 드러나는 시각적 남성성보다는, 부드러움과 유연함과 함께 비치는 내면의 강인함을 갖추고 함을 뜻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가진 운동에 대한 목적성이 더 이상 사회가 바라는 시각적 '여성성' 그리고 '남성성'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무언의 사회적 기준이 점점 약해지고 본인의 체형과 성향에 맞춘 자신만의 내외면의 건강함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게 몸과 마음을 단련해나가고자 하는 시대 인식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 나이키 젠더플루이드 매장 / 팬텀 루나

이런 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적극적으로 반응한 건 패션∙뷰티업계입니다. 


22년 7월 나이키는 전 세계 최초로 성별 구분 없는 젠더 플루이드 매장을 서울 홍대에 열었습니다. 해당 매장은 성별에 따라 판매 공간을 나눠놓지 않고 사이즈나 옷의 핏(Fit) 별로 상품을 진열해 두었습니다. 젠더 플루이드답게 마네킹의 얼굴을 가려 남녀를 구분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였으며, 진열된 상품들은 여성복의 상징인 허리선이 없어지는 등 중성적 스타일의 제품으로만 채워졌습니다.


성별을 드러내지 않고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는 젠더플루이드 매장 마네킹 ⓒ NIKE


이에 이어 나이키는 최근 연구, 디자인, 스타일링 등 2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만든 혁신적인 축구화 라인 '팬텀 루나(Phantom Luna)'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기존 축구화 라인들과 달리 '여성' 축구 선수들에게서 얻은 인사이트와 여성의 해부학적 특성들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여성 중심의 제품을 개발했다는 것을 넘어서 그들에게 자신감을 선사하고자 했던 나이키의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성을 위한 축구화로 개발이 되었지만 남성 라인 또한 구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기보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좋음이 특정 집단만을 위함이 아닌 모두를 위함임을 견고히 합니다.


2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탄생한 여성 축구화 팬텀 루나 Phantom Luna ⓒ NIKE


# 해리 스타일스 플리징

성별과 시대를 초월하며 독보적인 스타일을 선보여오고 있는 해리스타일스가 2021년 끝자락에 뷰티브랜드 '플리징(Pleasing)'을 론칭해 네일, 스킨케어, 의류 그리고 최근 향수까지 적극적으로 브랜드 확장에 힘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플리징의 첫출발이 뷰티 카테고리 중에서 '네일'제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제품에 남성 모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개하는 모습은 사회가 만든 경계를 힘 있는 개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허물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그의 스타일을 잘 반영한 결과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성별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브랜드에 대한 깊은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론칭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Shroom Bloom 라인의 모델이 된 Mick Fleetwood ⓒ PLEASING
남성이 네일 제품을 소개하는 Shroom Bloom의 화보컷  ⓒ PLEASING


남성성과 여성성의 적절한 균형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정신은 양성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떠한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 예외 없이 누구나 내면에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품으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여성은 여성성만을, 남성은 남성성만을 가진채 살아가는 듯 스스로를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가치와 특질도 결국 한 가지 측면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나가며 온전한 '나 자신(self)'을 완성할 수 있으며, 지금 그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표현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단보다는 '나' 개인이 중요해지는 시대 관련 함께 읽으면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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