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맑은 영혼 깊숙한 곳
어두컴컴한 귀퉁이 구석에는
꼬마 악마 하나가 살고 있다.
평소 잠이 많은 악마는
소년도 주위 사람도 눈치채지 못하게
아무 소리 없이 잠을 즐기곤 한다.
소년이 사랑에 빠졌을 때
악마도 슬슬 잠에서 깨어난다.
사랑은 숨바꼭질처럼 숨어 있고
묘지에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마법을 부리듯 찾아내어
다시 생명을 주고 금세 어른만큼 크게 키운다.
꼬마 악마는 이 증폭되고 흔들리는 감정들을
게걸스럽게 맛있게 먹어 치우며 점점 성장한다.
투명한 영혼 맑은 생각을 가진 소년은
잠에서 깨어난 악마의 존재를 눈치채고
악마가 더 이상 크지 못하게
차가운 이성의 쇠사슬로 악마를 묶고
호시탐탐 그가 풀려나지 못하게 감시를 한다.
소년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행복의 달콤함에 빠져들수록
악마를 묶던 쇠사슬은 점점 느슨해지고
악마는 그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소년이 영혼의 상처 속 가장 깊숙이
빛도 들지 않는 구석에 숨겨놓았던
사랑의 마음만큼 커다랗게 변한
암흑보다 불길한 어둠의 빛깔
불안이라는 감정을 먹어 치운다.
악마는 어느새 성인 어른만큼이나 커져 버려
소년이 묶어놓은 쇠사슬을 부수고 나온다.
소년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한다,
그의 사랑을 지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깨끗했던 영혼의 대지는
진득한 피와 먼지로 점점 폐허가 된다.
소년이 처음 느껴 본 사랑의 행복을
잃지 않으려는 절실한 마음은 오히려
악마에게는 달콤한 디저트가 된다.
악마는 음미하며 착실히
소년의 영혼 구석구석을 지배한다.
소년의 영혼의 투명한 빛이 겨우
촛불의 크기만큼 위태로워지고
소년은 마지막 발악을 한다.
소년은 그가 순전히 의지하고 있는
사랑에게 소리없이 외친다.
구해줘
널 잃고 싶지 않아
나를 이 불길한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줘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줘
소년의 외침은 성녀의
기도만큼이나 절실했지만
그만큼 거칠고 투박하고 성급하여
사랑에게 상처를 준다.
악마와의 싸움을 알지 못하는
사랑은 소년이 준 갑작스러운 상처에
놀라고 화가 나서
단단한 얼음의 성을 쌓고 들어간다.
소년은 사랑이 있는 얼음의 성에 무작정
돌진하다 차디찬 얼음의 창에 찔리고
다시 피를 흘린다.
사랑은 그런 소년이 두렵다.
악마는 즐겁다.
소년이 발악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이 간절하면 할수록
그의 힘도 즐거움도 커져만 간다.
그럼에도 소년의 마지막 영혼의 불빛은
꺼질 듯 위태롭지만 살아 있다.
사랑이 그에게 준 행복과
소년을 위한 배려와 세심한 마음들을
기억하며 마지막 힘을 다해
불빛을 지킨다.
이 불빛이 꺼지면 다시는 사랑을
만날 수 없으니까
사랑은 얼음의 성에서
다치고 피 흘리는 소년을 보며
두려움에 몸을 떨며
어찌할 줄 모른다.
소년의 상처에 다가가 피를 닦고
붕대를 감아 더 이상 피가 나지 않게 막고
소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성으로
데리고 들어오고 싶지만
사랑 역시 서툴고 두렵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소년이 얼른 나아서
다시 예전처럼 자신의 손을 잡고
장미꽃이 가득 핀 정원에서 함께
춤을 추면 좋겠다는 마음뿐,
달빛이 가득한 하얀 침실에서
포근하게 꼭 끌어안아 주길
사랑한다 속삭이며 입 맞춰주길
바라며
몸과 마음 모두 상처투성인 채
소년과 악마는 여전히
얼음성 밖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사랑은 소년이 얼른 낫길 바라며
서툰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