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붓질이 부산스러워 보인다. 그림을 보자마자 빨간 머리 앤이 생각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녀의 수다스러움이 떠오른다. 맑은 하늘에 바람 살랑 살랑 부는데 쫑알 쫑알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난 그 동화 속 인물이 싫다.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시끄럽다. 책으로만 봐도 시끄러워서 몇장 읽다말고 덮어버렸다. 왜 저렇게 남들한테 자기 얘기를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 누가 듣는다고. 왜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앤이 생각이 났지? 짧은 붓질이 쉴새 없이 이어져 있는게 수다스러움과 연결됬나? 아니면 덮고 덮인 붓질들이 솔직하지 못한 내 마음을 떠올리게 했나?
논문에서 보니 감정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많이 나타난다는 결과가 있더라. 어쩌면 난 앤을 질투하고 있는 것도 같다.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그렇다고 피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음이. '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