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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12. 2020

애증의 밥, 밥, 밥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 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로 특정할 수가 없으니. 종일 일에 시달려 영혼이 삼분의 일쯤은 날아간 상태에서 집에 돌아온 날은 얼른 파자마로 갈아입고 치맥의 세상으로 풍덩 빠진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바삭한 치킨 한 입을 일대일로 즐기다 보면 집 나간 영혼이 슬그머니 돌아오기도 하니까. 맥락 없이 쫀득한 쌀 떡볶이가 아른거리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단골 분식집으로 달려간다. 희한하게도 귀차니즘 따위는 떡볶이의 마력에 속절없이 지고 만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괜히 나왔을까. 어렸을 적 김장할 때마다 먹었던 엄마 표 닭개장도 잊을 수 없다. 왠지 모르겠지만, 김장하는 날에는 꼭 마당에다 가마솥을 걸고 닭개장을 끓이는 게 우리 집의 전통이었다. 아, 으레 상상하는 시골집이 아니다. 시내의 멀쩡한 양옥집에 시멘트 블록이 깔린 마당에서 벌어지는 행사였다. 갓 버무린 김장김치보다 나는 뭔가 야생적으로(?) 끓여진 닭개장을 고대하곤 했다. 


 이렇게 음식을 늘어놓으니 내가 무척 먹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굳이 따진다면 먹는 일에 관심이 덜한 사람이라 해야 맞다. 방금 아침 먹고 점심에 뭐 먹을까 고민하고 점심 먹자마자 또 저녁밥을 떠올리는 정도는 되어야 그쪽 종족이다. 나로 말하자면, 타고나길 위장이 약해 소화가 잘 안 된다. 자연히 먹는 양도 적다. 맛 집 앞에서 삼십 분씩 줄을 서는 것은 평생에 해본 적이 없다. 한정식이나 뷔페처럼 과하게 넘치는 음식을 보면 만족스럽다기보다는 부담스럽다. 오히려 맘에 드는 반찬 두세 가지로 깔끔하게 먹는 걸 즐긴다. 가능하면 가볍고 단순하게 먹기를 원한다. 먹지도 않을 반찬들을 있는 대로 늘어놓는 것도 반갑지 않다. 남이 해준 음식에 반찬 투정하는 사람은 진짜 밉상이다. 얻어먹는 자로서 짜든 시든 감사하게 먹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예의다.


 아들이 어릴 때는 지극정성으로 밥을 했다. 아들은 8년 동안 대안학교를 다녔더랬다. 학교에 급식이 없었기에 엄마들은 손수 도시락과 간식을 싸주어야 했다. 일반 학교의 엄마들은 방학만 되면 아이들 밥해주느라 진이 빠져 이제나저제나 개학을 기다린다던데. 우리에게는 일 년 365일이 방학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고 따뜻한 반찬을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엄마가 무얼 해주던 군말 없이 맛있게 먹어주었다. 덕분에 도시락 싸는 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자, 도시락 노동에서 해방되는 게 참으로 홀가분했다. 아들은 지금 군대에 가 있고 이제는 나도 예전처럼 밥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남편은 거의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에서는 나 혼자 밥을 먹는 편이다. 굳이 반찬을 자주 만들 필요도 없어 조금씩 사 먹는다. 주부 노릇 23년에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으면 웬만한 가사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 (주부에게도 정년퇴직을 허하라!)


 기름진 서양식에 비해 한식은 건강식, 다이어트식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그런 타이틀과는 별개로 한국의 음식문화는 유독 요리하는 사람을 혹사시키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밥과 여러 개의 반찬, 국이나 찌개로 이루어지는 밥상을 매끼 준비하는 일은 숙련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동시에 요한다. 나물 하나 무치는데도 얼마나 세세한 과정이 들어가는가. 한식에 감탄하던 외국인 여성이 자기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 먹은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난 뒤였다. 한식의 아이러니는 먹는 사람의 흡족함 속에 ‘정성’이라 일컬어지는 고단함을 깔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부 혼자에게 집중된 부담을 가족이 나누면 한결 밥상 차리는 일이 즐거울 텐데. 남편은 못 바꾸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요리를 가르쳐야 한다. 



 외국 여행을 할 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을 대하는 '산뜻한 시선'이다. 한국인이 무시하는 일품요리가 유럽이나 동남아에서는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인정받는다. 현지인들의 가정식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한국인들은 며칠간의 여행 중에도 햇반과 밑반찬을 싸들고 다닌다.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라는 신앙은 어찌나 견고한지. 한국인만큼 먹는 데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한 끼라도 밥을 안 먹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 일요일 점심식사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더니 다 먹고 나서 이제 밥은 언제 먹을 거냐고 묻는다는 남편들 이야기는 여전히 낯설지 않다. 부모님 세대가 겪은 보릿고개 시절이 자식들의 무의식 속에도 유전된 게 틀림없다. 우리는 아직도 ‘밥’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현실은 못 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먹어서 탈이 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늘어가는 비만은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고 그에 따른 다이어트 산업이 갈수록 번창한다. 꼭 비만이 아니어도 다이어트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편으로 TV만 켜면 여기저기서 먹방 프로그램이 튀어나온다. 세상에 맛있는 건 넘치고 그걸 모두 먹어봐야 재미난 인생이라는 듯이. 우리는 다이어트와 먹방 사이를 왔다 갔다 방황한다. 


 먹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첫 번째가 아닌가. 그러나 세상에 먹는 일만 중요하지는 않다. 먹을 걸 좋아하는 건 취향이지만 지나치게 먹을 것만 밝히면 추해진다. 식탐과의 적절한 밀당 그리고 때때로 초연함, 우리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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