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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13. 2020

어쩌다 웹 소설



웹 소설의 주된 독자층은 청소년부터 20대라고 한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오십이 넘은 독자가 여기 한 명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웹 소설을 즐겨 읽게 되었다. 몇 년 전 일을 시작하고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기를 게을리했다. 아마 그쯤부터 웹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 같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는 맞춤이었다. 그렇게 맛을 들이다 보니 잠깐의 짬이 생겨도 버릇처럼 핸드폰을 켜게 된다. 웹 소설과 가까워질수록 책과는 더욱 멀어지는 악순환. 이제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지경이다.


 주로 네이버의 ‘오늘의 웹 소설’을 보다가 ‘베스트리그’의 작품들까지 범위를 넓혔다. 베스트리그에서 인기를 얻거나 작품이 괜찮으면 오늘의 웹 소설로 올라간다. 신분상승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로판, 현판, 미스터리 물이다. 영화도 SF가 최애 취향이라 웹 소설도 비슷하다. 현대 로맨스는 읽지 않는다. 오글거리는 20대 연애 감성 하고는 맞지도 않거니와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류 스토리는 그저 유치할 뿐. 단 역사 로맨스는 또 괜찮다. 나는 아마도 현실적인 이야기보다 뭔가 ‘지금, 여기’가 아닌 배경에 매료되는 것 같다.



 <간택-왕들의 향연>, <마담 랭의 숙녀지침서>, <팔려 온 신부>, <너의 옷이 보여>, <재혼 황후>, <한시적 공작부인의 초상>, <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 요즘 연재 중인 작품 중에서 좋아하는 것들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이전에 재밌게 읽었던 작품도 많다만,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질 않네. 


 웹 소설 독자로서 (책과 멀어졌다는)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층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또는 숨어 있던 (유치한) 내 감성도 튀어나온다는 것, 요즘 유행하는 말투나 인터넷 용어를 알게 된다는 것, 당연히 재미가 있다는 것, 가벼운 피로회복제가 된다는 것 등은 쏠쏠하게 얻는 항목이다. 


 웹 소설은 이미 우습게 볼 장르가 아니게 되었다. 웹 소설 작가들의 수입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수준 높고 인기 있는 작품은 드라마나 영화로 재창조되기도 한다. 정통 소설에 비할 수 없이 웹 소설은 엄청나게 읽히고 팔린다. 앞으로 장르 소설이 서브 컬처를 벗어나 주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소설을 습작하다가 웹 소설계로 입문하는 작가들이 꽤 많다고 한다. 기본기가 탄탄할 것 같은 그들이 오히려 고전을 한다고 들었다. 이미 배어있는 정통 소설의 작법으로부터 쉬이 벗어나지 못해서란다. 


 나도 웹 소설 작가를 한 명 알고 있다. 원래는 다른 글을 쓰던 작가인데 작년부터 웹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 작품이 끝나고 올해 두 번째 작품에 들어갔다. 그녀의 작품은 인물 구성이 탄탄해서 오히려 독자가 적다고 한다. 가볍게 빨리빨리 읽혀야 하는데 쓸데없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본인은 이름 없는 초보 작가라고 부끄러워하지만, 나는 그녀의 용기와 감성에 박수를 보낸다. 나보다 두어 살 어린, 어쩌면 늦었다 싶은 나이에 이삼십 대가 판을 치는 물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건투를 빈다.


 새해를 맞아 나는 다시 책으로 돌아가려 한다. 외도는 할 만큼 했다. 올해는 이전과 다르게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읽고 싶은 말랑말랑한 책만 골라 읽었다면, 앞으로는 경제, 과학, 예술 등 소홀했던 분야를 포함하기로 했다. 권수에 연연하기보다는 천천히 깊이 있게 읽고 싶다. 일주일에 한 권씩 52권의 책을 목표로 한다. 물론 웹 소설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겠지만. 밥이 아니라 간식으로, 때때로 즐기는 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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