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 않았다

1차 항암을 마치고

by 소율


늘 그게 궁금했다.

왜 겁나지 않았을까? ‘암세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죽는구나 싶지도 않았다. 암이라니, 이제 죽을 수도 있다... 는 생각은 조금도 안 했다.

“괜찮아. 유방암은 암 중에서도 순한 놈이래. 쉽게 치료된다더라. 내가 아는 사람도 유방암이었는데 할 거 다 하고 잘만 살아. 20년이나 됐는데 뭘.”


친구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까짓 거 치료하면 되겠지. 암에 대해 워낙 아는 게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무식해서 용감한 자가 바로 나였다. 수술을 한 뒤에야 유방암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찾아 읽고 온라인 유방암 카페에 가입했다. 이론적인 지식을 얻고 현재 치료 중인 사례들을 조사했다. 친구 말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방암은 치료가 잘 되는 편이지만 재발과 전이 역시 잘 되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 마감기한이 없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15년 뒤에도, 얼마든지 재발하는 녀석이었다. 공부 잘하는 날라리 학생처럼 포기할 수도 안심할 수도 없는 문제아 같달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여전히 두렵지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난 바보인가? ‘죽음의 영역’에 한 발을 들여놓고도 겁을 내지 않다니. 남들은 죽을까 무서워서 울고 또 울었다는데.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나 정말 왜 이러지? 아직 항암치료의 고통을 몰라서일까? 무감각, 우둔함, 멍청함...... 온갖 단어들이 떠올랐다.


남들처럼 무섭고 겁나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사는 게 달라질 것 같았다. 남은 인생, 절박하게 잘 살아야겠다고 느끼고 싶었다. 언제라도 이 삶을 떠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절실하다는 걸,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걸, 나도 깨닫고 싶었다. 물론 머리로는 그 모든 걸 알았다. 하지만 가슴이 떨리지 않았다.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몇 달 동안 그 고민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나는 뭐지?


그래도 유방암 환자가 되고 나서 확실히 달라진 점. 눈물을 되찾았다. 꼭 슬퍼서도 아닌데 자주 운다. 책을 읽다가도 울고.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고. 남편 얘기를 듣다가도 울고. 이제는 울보가 되었다. 전에는 정말 눈물이 터져야 할 상황인데도 울지를 못했다. 가슴은 콱 막히는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 속에서 울음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이제는 그 봉인이 풀려버린 느낌이다. 나는 이 해방이 좋다. 눈물 해방 만세!



항암 1차를 마친 지금. 여전히 겁내지 않고 살고 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궁금증이 저절로 풀려 버렸다. 진즉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그건 니가 그만큼 강해서 그래.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은 겁내고 울고 불고들 하지.

넌 이걸 이겨낼 만큼 충분히 준비가 돼있으니까.”


당시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나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아둔해서 그렇다고, 멍청해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야말로 얼마나 아둔했는지.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거다. 나는 나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이제는 나를 정확히 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보다 나를 더 믿어준 친구라니. 그동안 늘 나는 인복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도 이상하게 죄다 연락이 안 되고, 지금도 친구들이 많지 않고. 이제는 수십 명의 인맥보다 단 한 명의 친구가 보석임을 알겠다. 게다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친구들이 몇 명이나 더 있다. 이만하면 인복이 차고 넘치는 게지. 이만하면 행복한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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