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모전여전

그 엄마의 그 딸

by 소율



여전히 항암 중.

수다 떨기. 하루 일상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히히히. 엄마랑 하루 종일 수다를 떤다. 어릴 때 이후로 부모님과 이렇게 밀착해서 지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릴 때조차도 그런 적이 없었다. 가게를 해서 늘 나가 계시는 탓이다. 그동안 엄마, 아부지를 잘 몰랐구나 하는 걸 느낀다. 두 분의 대화 스타일. 두 분의 관계. 새롭고 재밌다. 엄마가 마치 나를 새로 키우는 것처럼, 또 못 받아본 산후조리를 받는 기분으로 나날을 즐기고 있다. 그동안 못 했던 얘기들을 일러바치면서. 큭큭.


엄마와 내가 이리 친밀할 줄은 몰랐다. 언제나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언니가 엄마를 빼닮았고 둘이 같은 과라고 여겼다. ‘엄마는 언니랑 통한다. 나랑은 다르다.’라고. 요즘 엄마 얘기를 들으면서, 내 살아온 지난날을 얘기하면서 나도 엄마를 닮은 구석이 많음을 알았다. 언니는 외모와 성격이 닮았지만 난 엄마의 근성과 가치관을 닮았다. 아니 예전의 엄마는 언니랑 비슷했는데 요즘의 엄마는 나랑 비슷하다. 엄마가 많이 달라지셨다. 그리고 엄마도 둘째 딸, 나도 둘째 딸. 모녀는 둘째에서 둘째로도 이어지나 보다.


늘 한구석에 마치지 못한 숙제 같은 찜찜함. 그게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정이었다. 항상 언니가 먼저다. 언니가 우선이다. 나랑은 통하지 않는다는 괴리감. 나에게 온전히 관심을 주어본 적이 없는 엄마. 그 미진함과 찜찜함을 마음껏 풀고 있는 중이다. 이전과는 다르게 모든 걸 내게 맞추고, 해주려고 하는 엄마. 해묵은 껄끄러움이 싹 씻겨나가고 있다.


사실은 엄마와 이렇게 마음을 터놓게 될 줄 몰랐다. 세상살이에 쌓아두었던 억울했던 일들, 속 썩은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얘기한다. 들어주질 않아서,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얘기들. 속 시원히 털어놓는다. 다 일러바친다. 엄마도 아부지에게 속상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이런 얘기들을 못 하고 살았던 건 아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그랬다. 모든 걸 들어주고 받아주는 엄마에게 하는 얘기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울 엄마가 이렇게 받아주는 엄마였구나. 내가 늘 기대했던 자상한 엄마 모습이 우리 엄마 속에 있었구나. 그동안 무심했던 엄마 노릇을 한꺼번에 하시는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엄마를 잘 몰랐구나. 내가 속단했던 것보다 우리 엄마는 훨씬 멋진 분이었다.


늘 못마땅했던 엄마의 종교가 엄마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의 하나님이 꽤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이전에 보아온 엄마보다 크고 따뜻한 엄마였다. 엄마는 자신을 키울 줄 아는 분이었다. 내가 아등바등 열심히 세월을 사는 동안 울 엄마도 열심히 자신을 성장시켰다. 일흔넷에 그리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 먹어갈수록 깊어지기보다는 욕심만 늘기 쉬운 게 노년의 함정이다. 드신 나이만큼 연륜 깊은 노인을 만나기 어렵지 않은가.


엄마는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이게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울 엄마의 장점이다. 무엇이든 작은 거 하나라도 새롭게 알게 되면 그리 감탄을 하신다. 결코 내가 아는 게 전부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여긴다. 배운 걸 깜빡 잊으면 또 그리 안타까워하신다. 가스대에서 요리를 하실 때, 환풍기 트는 걸 가르쳐 드렸는데 자꾸 까먹으신다.


“엄마, 환풍기 틀어야지.”

“철들자 망령이다. 에유, 언제 배워? 또 까먹었네!”


또 하나. 엄마랑 얘기하며 느낀 것. 나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사람이라는 사실. 늘 나를 과소평가해 왔다는 것. 죽을까 봐 겁이 잔뜩 나야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은 다 느낀다는 그 무엇을 나는 놓칠까 봐 그게 더 겁이 났다. 이제는 알았다. 절망하지 않을 만큼 내 그릇이 크다는 것을. 그걸 의심하다니. 여전히 자신을 우습게 보았던 거지. 자신만만해도 된다. 너 자신에 대해. 넌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너는 너를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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