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머리를 밀기로 했다. 어제 아침, 이발기를 주문해 두었다. 배송도 빠르지, 낮에 벌써 도착했다. 오늘은 남편과 아들만 집에 있다. 부모님은 충주 집에 내려가셨다. 내 상태도 괜찮고 해서 이삼일 집에 다녀오시기로 하셨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목에 보자기를 둘렀다. 오늘은 남편이 미용사. 여행 다닐 때는 늘 내가 아들 머리를 잘라주곤 했다. 이제는 내가 깎일 차례다. 머리카락 뭉치가 툭툭 떨어졌다. 속에서는 좀 울컥했지만 표를 낼 수는 없었다.
“한새야, 엄마 이쁘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자기 머리 밀어도 이쁘다.”
“글쎄, 그냥 스님 같은데? 요 쪽을 더 깎아봐, 아빠. 요기가 더 길어.”
뭔가 시원하고도 허전했다. 거울을 보았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이 모습은? 웬 비구니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좀 웃겼다.
“으~, 나 정말 스님 같다! 머리통 옆이 왜 이렇게 튀어나왔냐?
이럴 때 두상이라도 이쁘면 얼마나 좋아? 아유, 못생겼어."
“아니야, 자기는 머리가 작아서 이뻐. 머리를 깎으니까 얼굴이 더 작아 보이네.
이 머리도 잘 어울린다. 진짜라니까?"
“엄마, 뒤통수는 괜찮은데, 옆이 너무 튀어나왔어.”
남편은 뻔한 거짓말로 위로하느라 바쁘고, 아들은 팩트를 전달하느라 바빴다. 나는 못생긴 내 모습이 너무 웃겼다. 푸하하~ 아까 낮에만 해도 계속 갈등 중이었다. 막상 머리를 밀려고 하니까 망설여졌다.
‘최대한 버텨 볼까? 뒷머리라도 조금 남겨둘까? 그러면 모자 써도 덜 어색할 텐데.
아니야, 그럼 더 이상하겠지'
가만히 있을 때는 머리가 많이 빠지지 않았다. 어제처럼 귀밑머리를 손으로 훑어보았다. 한 움큼이 빠졌다. 어제는 한두 가닥만 빠지던 자리였다. 하룻밤 새 이렇게 달라지다니. 역시 밀어야겠다. 어차피 며칠 못 버티겠구나. 그제야 완전히 포기가 되었다.
깎고 나니 엄청 시원했다. 추울 줄 알았는데 괜찮았다. 머리카락이 두피에 없는 느낌이 생소했다. 내가 나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했다. 자꾸 보면 익숙해지겠지. 미리 사다 놓은 모자를 이것저것 써 보았다. 모자를 쓰니 빡빡머리 티가 안 나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흠, 이만하면 뭐 괜찮네.
며칠 뒤 나는 결국 미용실에 갔다. 이발기로 민 머리가 3미리였는데 그것도 빠지는 것이었다. 짧은 게 빠지니 더 따가웠다. 이번에는 미용실 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 번 밀어보니 별 거 아니더라. 혼자 가서 씩씩하게 밀었다. 아이고, 그러고도 집에서 면도기로 다시 밀었다. 역시 그 짧은 머리가 빠지기 때문. 3중 면도날 질레트로 완전 빡빡이로 밀고 나서야 머리 깎기가 끝났다.
재밌는 건 이 3미리 있고 없고 가 아주 차이가 난다. 3미리 있을 때는 그냥 좀 시원한 정도? 그것마저 완전 없으니 너무 춥다. 신체의 열이 머리로 대부분 빠져나간다더니 사실이다. 여간 썰렁한 게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꼭 모자를 써야 안 춥다.
그런데 두피가 어쩜 이렇게 희고 이쁜지. 얼굴은 긴 여행으로 많이 탄 데다 항암제 때문에 시커먼데, 두피는 연한 아기 피부다. 내 피부가 본래 이랬지. 어릴 때부터 피부가 참 희고 고왔다. 30대까지는 그랬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곤 했었지. 흠흠.
지금은 2차 항암 하고 세 번째 주다. 머리 민지는 3주 반이 지났다. 다음 주에 3차 항암 들어간다(항암은 3주가 한 사이클로 돌아간다). 그동안 빠지지 않은 머리가 다시 자라고 있다. 신기하다. 항암 중에도 자라는 녀석들이 있다니. 항암을 한다고 머리카락이 100% 다 빠지는 것은 아니다. 군데군데 골룸처럼 빠진다. 안 빠지고 살아남은 녀석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웃기다. 깨끗이 깎아놓은 잔디밭에 잡초가 삐죽삐죽 솟아나는 거 같다.
이제는 나도 아들도 남편도 이 빡빡머리가 익숙해졌다. 아들과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꼭 내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본다. 뭐 장난감 같다. 나는 아들에게도 한번 깎아보라고 실실거린다. 시원하니 좋다고. 녀석, 절대 안 깎는단다. 이런 배신자. 요놈, 잘 때 몰래 싹 깎아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