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빡빡머리 한번 해보실라우?

금방 익숙해진다

by 소율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집에서 머리를 밀기로 했다. 어제 아침, 이발기를 주문해 두었다. 배송도 빠르지, 낮에 벌써 도착했다. 오늘은 남편과 아들만 집에 있다. 부모님은 충주 집에 내려가셨다. 내 상태도 괜찮고 해서 이삼일 집에 다녀오시기로 하셨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목에 보자기를 둘렀다. 오늘은 남편이 미용사. 여행 다닐 때는 늘 내가 아들 머리를 잘라주곤 했다. 이제는 내가 깎일 차례다. 머리카락 뭉치가 툭툭 떨어졌다. 속에서는 좀 울컥했지만 표를 낼 수는 없었다.


“한새야, 엄마 이쁘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자기 머리 밀어도 이쁘다.”

“글쎄, 그냥 스님 같은데? 요 쪽을 더 깎아봐, 아빠. 요기가 더 길어.”


뭔가 시원하고도 허전했다. 거울을 보았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이 모습은? 웬 비구니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좀 웃겼다.


“으~, 나 정말 스님 같다! 머리통 옆이 왜 이렇게 튀어나왔냐?

이럴 때 두상이라도 이쁘면 얼마나 좋아? 아유, 못생겼어."


“아니야, 자기는 머리가 작아서 이뻐. 머리를 깎으니까 얼굴이 더 작아 보이네.

이 머리도 잘 어울린다. 진짜라니까?"


“엄마, 뒤통수는 괜찮은데, 옆이 너무 튀어나왔어.”


남편은 뻔한 거짓말로 위로하느라 바쁘고, 아들은 팩트를 전달하느라 바빴다. 나는 못생긴 내 모습이 너무 웃겼다. 푸하하~ 아까 낮에만 해도 계속 갈등 중이었다. 막상 머리를 밀려고 하니까 망설여졌다.


‘최대한 버텨 볼까? 뒷머리라도 조금 남겨둘까? 그러면 모자 써도 덜 어색할 텐데.

아니야, 그럼 더 이상하겠지'


가만히 있을 때는 머리가 많이 빠지지 않았다. 어제처럼 귀밑머리를 손으로 훑어보았다. 한 움큼이 빠졌다. 어제는 한두 가닥만 빠지던 자리였다. 하룻밤 새 이렇게 달라지다니. 역시 밀어야겠다. 어차피 며칠 못 버티겠구나. 그제야 완전히 포기가 되었다.


깎고 나니 엄청 시원했다. 추울 줄 알았는데 괜찮았다. 머리카락이 두피에 없는 느낌이 생소했다. 내가 나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했다. 자꾸 보면 익숙해지겠지. 미리 사다 놓은 모자를 이것저것 써 보았다. 모자를 쓰니 빡빡머리 티가 안 나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흠, 이만하면 뭐 괜찮네.

며칠 뒤 나는 결국 미용실에 갔다. 이발기로 민 머리가 3미리였는데 그것도 빠지는 것이었다. 짧은 게 빠지니 더 따가웠다. 이번에는 미용실 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 번 밀어보니 별 거 아니더라. 혼자 가서 씩씩하게 밀었다. 아이고, 그러고도 집에서 면도기로 다시 밀었다. 역시 그 짧은 머리가 빠지기 때문. 3중 면도날 질레트로 완전 빡빡이로 밀고 나서야 머리 깎기가 끝났다.


재밌는 건 이 3미리 있고 없고 가 아주 차이가 난다. 3미리 있을 때는 그냥 좀 시원한 정도? 그것마저 완전 없으니 너무 춥다. 신체의 열이 머리로 대부분 빠져나간다더니 사실이다. 여간 썰렁한 게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꼭 모자를 써야 안 춥다.


그런데 두피가 어쩜 이렇게 희고 이쁜지. 얼굴은 긴 여행으로 많이 탄 데다 항암제 때문에 시커먼데, 두피는 연한 아기 피부다. 내 피부가 본래 이랬지. 어릴 때부터 피부가 참 희고 고왔다. 30대까지는 그랬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곤 했었지. 흠흠.


지금은 2차 항암 하고 세 번째 주다. 머리 민지는 3주 반이 지났다. 다음 주에 3차 항암 들어간다(항암은 3주가 한 사이클로 돌아간다). 그동안 빠지지 않은 머리가 다시 자라고 있다. 신기하다. 항암 중에도 자라는 녀석들이 있다니. 항암을 한다고 머리카락이 100% 다 빠지는 것은 아니다. 군데군데 골룸처럼 빠진다. 안 빠지고 살아남은 녀석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웃기다. 깨끗이 깎아놓은 잔디밭에 잡초가 삐죽삐죽 솟아나는 거 같다.


이제는 나도 아들도 남편도 이 빡빡머리가 익숙해졌다. 아들과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꼭 내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본다. 뭐 장난감 같다. 나는 아들에게도 한번 깎아보라고 실실거린다. 시원하니 좋다고. 녀석, 절대 안 깎는단다. 이런 배신자. 요놈, 잘 때 몰래 싹 깎아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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