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셔도 될까? 얼른 석세스 카페(다음의 유방암 카페)를 검색해 보았다. 보통 하루에 원두로 한 잔 정도씩은 마신단다. 유방암 환자에게 커피가 안 좋은 점은? 카페인이 호르몬에 영향을 준다는 것. 그리고 카페인은 칼슘도 빠져나가게 한다는 것. 여성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인 환자들에게는 더욱 좋지 않단다. 음성이면 커피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듯. 양성이면 여성호르몬이 암세포 형성에 관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모든 치료가 끝나도 호르몬 억제제를 5년 동안 먹어야 한다.
에구, 그렇다고 완전 끊자니 사는 데 너무 재미가 없잖아. 가끔 향 좋은 커피 한 잔이 얼마나 일상을 살맛 나게 해 주는데. 게다가 비 오는 날 통 유리창으로 내다보면서 마시는 커피는 나의 행복이거늘. 1주일에 한두 잔. 그게 내 양이다. 그리 하기로 했다. 꼭 당길 때 1주일에 한두 잔 아메리카노로.
지금 커피 3분의 1 스푼을 넣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구수하고 향기롭구나.^^ 대신 커피 마신 날은 물을 더 많이 마시기. 몇 주 만에 마시는 커피다. 그저 인스턴트커피 약간을 넣은 엉터리 아메리카노지만, 그 맛은 남부럽지 않아!
"호호호 감사합니다, 커피님."
필요한 순간에, 먹고 싶은 순간에,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멋지게 뽑아낸 드립 커피 한 잔 보다 지금 이 순간, 이 한 잔이 내게는 감미롭다. 하얀 원목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한 잔을 음미해 본다. 얼마 전에 그토록 갖고 싶었던 책상을 장만했다. 침대 옆에 놓아두고 거기서 책도 읽고 일기도 쓴다. 나의 작업실인 셈. 후후. 흐뭇~하다.
보라색 꽃무늬 커피 잔. 그대에게도 감사합니다. 킴스클럽에서 산 싸구려지만 ‘나만의 커피 잔’으로 인정받은 어여쁜 당신. 오늘처럼 초간단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늘 당신에게 담아 마시지. 얇고도 가볍고 한 손에 착 감기는 몸매. 남편과 아들이 호시탐탐 당신을 노리지만, 그대는 언제나 ‘나의 머그컵’이라오. 오늘도 그대와 함께 마신 따뜻한 커피. 당신과 더불어 향기로왔소.
폴란드에서 마신 커피가 생각난다. 비 아워 비에자 국립공원이 있는 동네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유일한 유스호스텔에 며칠 머물렀다. 숙소 울타리 바로 옆에 카페가 있었다. 역시 그 동네에서 유일한 카페.
커피는 두 종류. 화이트 커피 혹은 블랙커피. 화이트 커피라니? 커피가 하얗단 말인가? 아니다. 그냥 우유를 넣은 커피를 화이트 커피라고 불렀다. 뭐 폴란드에서는 그런 가보다. 유럽스러운, 정확히 말하면 폴란드스러운 아기자기한 장식과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폴란드 전통 음악까지. 작은 잔에 나오는 화이트 커피. 진하지는 않았지만 우유맛이 부드러웠다. 그 집에 매일 갔다. 소읍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 마을. 유리창 밖으로 썰렁한 거리를 내다보며 각자 일기를 쓰곤 했지.
마을에서 한 시간쯤 걸어가면 작은 기차역을 카페로 운영하는 곳이 있었다. 기차 레일 위에 테이블이 앉아있는 곳이다. 여기서도 커피 한 잔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았지. 그 동네 하늘은 어쩜 그렇게 환상적인지. 연옥 색부터 켜켜이 짙어지는 하늘색이었다. 미얀마 인레 호수에서 보았던 바로 그 하늘색.
오늘의 커피가 그때만 못하지는 않다. 폴란드에서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다. 가만히 보니 커피 잔의 엉덩이 한 귀퉁이가 살짝 깨졌다. 아, 그랬지. 수술한 뒤 멋모르고 아픈 팔로 설거지하다가 밥공기 하나가 미끄러졌다. 그 통에 그릇 몇 개가 이가 나갔다. 다행히도 주둥이 부분이 아니라서 멀쩡하게 쓸 수 있다. 당시에 이 나간 밥공기와 접시는 버렸지. 아직 이 컵과는 인연이 남아 있나 보다. 아예 당신을 못 쓰게 되어버렸다면 많이 섭섭했을 텐데. 이래저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