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Feb 06. 2021

완전무장 치과 방문기

22세기인가요?

    

오른쪽 어금니가 시원찮다. 뭉근하니 아프다 말다 느낌이 안 좋다. 위쪽인지 아래쪽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며칠 뒤 왼쪽 어금니도 이상했다. 치과에 가야 한다는 신호가 분명하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가야겠다. 그런데 이거 수백만 원은 깨지는 거 아냐? 덜컥 겁이 났다. 치과는 산부인과 다음으로 가기 꺼려지는 병원이다. 치통도 무섭지만 백만 원쯤은 우습게 날아가는 상황도 못지않게 무섭다. 나는 치아가 부실해 금으로 씌우고 때우고 임플란트 한 것까지 공사가 많았다. 이번엔 또 어떤 공사를 해야 하나? 내가 다니는 치과에선 6개월에 한 번씩 스케일링하라는 문자가 온다. 최근에 그 문자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생각보다 치과에 간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예감이 싸하다.


 예약 날 저녁 5시, 치과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갑자기 직원이 뛰어나온다. 


“잠깐만요! 그냥 들어오시면 안 되고요, 밖에서 옷 벗고 이거 입으셔야 해요.”


무심코 들어선 나는 다시 쫓겨났다. 그제야 문 입구에 쭉 늘어선 장비(?)들이 보였다. 손 소독, 발열 체크, 문진표 작성은 기본이니까 그렇다 치자. 머리에 쓰는 비닐 캡과 신발에 씌우는 덧신, 우비 비슷한 비닐 옷을 입고 손에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어야 했다. 눈과 발 외에는 밖으로 나온 부분이 거의 없다. 마치 코로나 방역 복장과 비슷해졌다. 벗어 놓은 외투와 가방 역시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넣었다. 병원의 직원들과 손님들의 모습이 똑같아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온몸을 둘둘 싸고 완전무장한 뒤에야 입성을 허락받았다. 아 코로나 시대엔 동네 치과 한 번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펐다. 


철저한 절차 뒤에 나는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단지 목소리로만. 아주 앳된 음성의 여자 의사였다. 안 그래도 진료용 의자에 누워 있으면 의사 얼굴이 안 보인다. 치료가 끝나고서야 잠깐 마주 보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제는 서로 온통 모습을 가려서인지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다. 의사가 내 옆에 있으나 의사를 볼 수 없다니. AI에게 진료받는 느낌이랄까. 이 뭣고? 무슨 22세기 미래 상황도 아니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그녀는 어금니 위와 아래 중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글쎄, 그게 애매하다는 거지. 위와 아래를 눌러보고 두드려보고 이런저런 질문 끝에 진단은 다음과 같았다.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찌르르하는 통증이 있는데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양쪽 턱 근육이 아파도 치통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일단 한 달간 지켜본 뒤 다시 점검한다. 오늘은 스케일링만 하고 간다.’


나는 스케일링 문자를 보고도 까먹는 경우가 있으므로 문자를 자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하는 스케일링 역시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내려앉은 잇몸 때문에 할 때마다 시리고 아프다. 윙윙 소리를 들으니 임플란트 할 때가 생각난다. 잇몸에 나사를 박을 때 뼈를 뚫는 그 소리는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끔찍한지. 그걸 떠올리니 스케일링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갈대처럼 금세 마음이 바뀐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치아도 돈도 무사하니 그저 감사할밖에.


한결 가뿐하게 치과를 나섰다. 그러나 들어올 때의 과정을 거꾸로 돌려야 집에 갈 수 있다. 문 밖에서 입었던 모든 걸 다시 벗었다. 그것들은 옆에 놓인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쓰레기통은 이미 버린 일회용품들로 가득했다. 철저하게 방역하는 건 좋지만 이 많은 쓰레기는 또 어쩔 거야. 코로나 시대의 악순환. 환경을 마구 파괴한 대가로 전염병이 닥쳤는데 방역을 위해 또 일회용품을 남발하고 있다. 매일 갈아 쓰는 마스크부터 늘어난 배달음식과 인터넷 배송은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양산한다. 죄책감이 반복된다. 마음은 도로 무거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