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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07. 2021

늦깎이의 귀걸이 이론

늦깎이 전문형입니다


 “느이는 어째 엄마를 안 닮았니?”


엄마가 언니와 나를 보고 자주 하는 말이다.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젊어서부터 화장이 선수급이고 반지, 귀걸이, 목걸이 역시 필수 아이템이다. 심지어 손톱에 매니큐어도 이쁘게 잘 바른다. 여든 넘은 노인네가 시력도 좋다니까? 주말에 언니 집에 모셔오면 반드시 들르는 코스가 네일숍. 언니나 나나 꿈도 꾸지 않는 진한 꽃분홍쯤은 엄마에게 기본. 그 정도는 되어야 울 엄마 눈에 차니까. 하긴 우리 자매는 아예 매니큐어를 바르지도 않지만. 생애를 통틀어 다섯 번쯤이나 발라봤을까? 즉 자매 모두 꾸미는 데는 관심도 소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로 즐기는 액세서리가 하나 있다면, 바로 귀걸이다. 언니는 딸들의 영향 때문인지 예전부터 귀걸이를 자주 했다. 아마 일찌감치 귀를 뚫었던 것 같다. 나는 꽃 같던 20대에는 귀걸이고 목걸이고 안중에 없었다. 오히려 나이 먹고 귀걸이에 눈이 갔다. 언젠가부터 예쁜 귀걸이를 보면 하고 싶은 욕구가 활화산처럼 솟는 것이었다. 그런데 맘에 드는 귀걸이는 예외 없이 구멍에 거는 스타일이었다. 귀를 못 뚫은 나에겐 그림의 떡일 뿐.


나도 사실 귀 뚫기를 시도했었다. 처음 귀를 뚫었을 때 진물과 피가 나고 영 아물지 않길래 금방 포기했었지. 20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결심했다. 이번엔 반드시 내 귓불에 구멍 한 쌍을 남기고 말리라. 이게 결심까지 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의 나는 꽤나 진지했다. 귀를 뚫고 6개월을 넘게 버틴 끝에 드디어 완전한, 다시 말해 귀걸이를 걸 수 있는 귀가 되었다.


야호, 드디어 나도 귀걸이를 할 수 있는 종족이 되었다네! 나는 여행을 갔을 때 마음껏 귀걸이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의외로 여행지에서 귀걸이를 많이 판다. 귀걸이가 훌륭한 기념품이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지, 한 번 들어보실라우?


‘가벼운 데다 부피가 나가지 않고, 현지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선물로도 탁월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건질 수 있다.’


어떠신가, 매력적이지 않은가?



나는 유럽 여행 중 스페인에서 예쁜 귀걸이를 여러 개 사 왔다. 스페인 느낌 물씬 나는 안달루시안 풍의 아이들로. 세비야 구시가지 기념품점마다 전시된 알록달록한 귀걸이들을 구경하는 건 나의 기쁨이었다. 제대로 필 받은 나는 스페인 다음 여행지였던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귀걸이를 샀다. 사 온 귀걸이 중 두어 개는 언니에게 선물하고 나머지는 내가 종종 하고 다녔다. 한국에서는 주로 귀에 붙는 조그만 귀걸이들을 하는데 이것들은 정반대로 크고 화려하다. 평생 수수한 편이지만 귀걸이만큼은 튀어도 괜찮다는 개똥철학을 고수한다. 스스로 허락하는 작은 사치랄까.


어느 날 동네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자기, 귀걸이가 너무 화려한 거 아냐?”

그럼 나는 고개를 쳐들고 이렇게 말해 주었다.

“뭐 어때? 취향이니까 존중해 주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정해진 때를 따르는 형’과 ‘제 맘대로 때를 만드는 형’이 있다. 나는 후자, 특히 ‘늦깎이 전문형’이라고 해야 맞다. 뭐든 뒤늦게 저지른다니까. 여행도 출간도 일도 운전도 귀걸이까지. 흐흐흐.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예쁨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뭐가 됐든 생에서 ‘총량의 법칙’이란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빠르든 늦든 할 일은 언제가 반드시 하게 되므로. 나에게 남은 늦깎이 용 할 일은 또 뭐가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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