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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10. 2021

남편은 순금 목걸이가 갖고 싶다고 했다

금붙이 말고 다른 걸로 해줄게


“당신, 요즘 끼는 반지 있어?”

“아니. 반지 끼면 손 씻을 때 비누 고 그래서 난 싫더라. 왜, 반지 사주려고?”     


첫 줄이 누가 한 말일까? 보통 남편의 말처럼 들리지만 내가 한 말이다. 결혼 26주년 기념일이 다음 달이다. 우리 부부에게 해마다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이 특별하진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비싼 외식을 하는 정도랄까. 3년 전부터 남편이 귀걸이나 목걸이를 선물해 준다. 그동안 없었던 자상함이 나이 먹어 생겼다고 자랑하고 싶으나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고. 내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요구하다니,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기분에다가 민망함을 듬뿍 끼얹는 심정이지만. 옆구리라도 안 찌르면 생전 받을 일이 없으니까?


2011년 세계여행을 준비할 때 집 안에 있던 모든 금붙이를 팔아 경비에 보탰다. 덕분에 실반지 하나 남은 게 없슈. 어쨌거나 그때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액세서리는 무조건 금이어야 한다!’ 14k라도 되어야 나중에 화폐 교환이 가능하다. 스왈로브스키 같은 메탈은 살 때만 비싸지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 게다가 금은 물에 닿아도 괜찮다. 샤워할 때마다 뺐다 끼웠다 할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편리해? 그런데 요즘 금값이 오죽 올랐나. 그래서 결혼기념일마다 금(현실적으로는 14K)으로 된 액세서리를 하나씩 받기로 했다.

 


전에는 금붙이를 몸에 지니는 게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비상금이라고 여긴다. 정말 급할 때 숨구멍이 되어주니까. 물론 살 때와 다르게 푸욱 깎이는 금액이 되어버리지만. 나는 새가슴에다 손까지 작은가벼. 금붙이가 두어 개 생겼다고 벌써 만족하려는 것 좀 봐.


특히 이번 결혼기념일엔 내가 남편에게 선물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이 들지 뭔가. 작년 올해 여행을 못 가는 덕에 모아두었던 여행자금을 쓰면 된다. 그런데 반지가 싫다네? 아 그럼 뭘로 하지? 남자에게 귀걸이를 줄 수도 없고 목걸이 역시 아니지 않나?    

 

“나 사줄 거면 번쩍번쩍하는 두꺼운 순금 목걸이로 해주라!”     


엥??? 이 냥반 양심 좀 봐! 취향은 또 어떻고? 뭐 순금 목걸이이이!!! 당신이 조폭이냐. 해맑기도 하셔라. 저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게 슬플 뿐이다. 듣는 순간, 사주고 싶던 마음이 싹 사라진 건 알려나 몰라. 무슨 선물인지 왜 선물하는지는 상관없고 다짜고짜 24K를 외치는 배짱은 뭐지???   

   

“됐어! 순금?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곤 며칠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남편에게 뭘 선물할까 궁리 중이다. 순금 따위는 당연히 안 되고요, 못 하고요. 남자가 하기엔 반지가 적격인데 싫다 하니 어쩌지? 남편의 선물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나는, 사실 스스로에게 아주 낯설다. 26년째 살고 있지만 서로 좋았던 시간보다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은 신혼 초부터 아들을 빼앗긴 것 같은 태도로 끊임없이 부당한 행동과 거친 언사를 일삼았고 남편은 그것에 동조하거나 외려 한술 더 뜨는 식이었다. 이혼을 생각했던 적은 수없이 많았다. ‘수없이’란 말 그대로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는 뜻이다.


아들과 세계여행을 떠날 때 이혼을 99% 결정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팔자 좋아 떠나는 세계여행 같았겠지만, 실제론 집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뛰쳐나간 여행이었다. 우리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아진 건 세계여행과 유방암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겪으며 내가 시댁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온 뒤부터였다. 책 제목처럼 ‘며느리 사퇴’를 했다.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나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결혼 이후 나를 위한 일상이 가능한지도 몰랐는데 해보니 그렇더라고.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누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이었다.  남편과 시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암이 생겼다는 믿음이 조금씩 흐려졌다. 원망하는 마음도 옅어졌다. 유방암 9년 차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으리라. 아마 중간에 재발이나 전이가 있었더라면 변함없이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는 성격이 지독히도 맞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모든 면에서 정반대일까. 다만 내가 그를 바꾸거나 고칠 수 없음을 인정했다. 한 번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 다짐하고 선언하고 노력하고 또 무너지는 과정을 여러 번 되풀이한 끝에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수월해졌다. 오래 걸렸다. 이제 됐다 싶은 지점까지 아직 멀었지만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그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었다. 그 길의 중간 어딘가가 아마 내가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남편, 선물은 더 생각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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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순금 목걸이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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