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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16. 2021

엄마의 식사법

엄마의 망각을 인정하기

    

엄마가 오셨다. 다음 날 아침상은 평소보다 푸짐하다. 시금치, 도라지, 고사리나물. 더덕 무침. 육개장. 오징어 젓갈. 계란 프라이. 보통 일요일 아침밥을 이렇게 차리진 않는다. 아들과 나는 (특히 휴일엔) 10시쯤에야 토스트나 과일 정도로 가볍게 먹기 때문이다. 엄마는 뭐든 잘 드시긴 하지만 일단 있는 대로 차렸다.

 

그녀와 함께 밥을 먹으려면 세 살 아기 다루듯 살펴야 한다. 엄마가 밥상을 대하는 태도는 이렇다. 일단 의자를 식탁과 족히 50센티미터는 멀리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앉는다. 즉 몸통은 옆으로, 두 손과 얼굴은 앞으로. 허리가 틀어져 상당히 불편할 텐데도 늘 그런 자세다. 나는 속으로 ‘휴~’ 한숨을 내쉰다.

 

 “엄마, 또 그렇게 앉았네? 몸을 비틀고 어떻게 밥을 먹어?”


끙차 하고 엄마를 앉힌 채 의자를 식탁 앞으로 바싹 당기고 몸을 정면으로 돌려준다. 그러면 그녀는 겸연쩍게 씩 웃는다. 의자에 앉은 채 당겨지는 걸 약간 재밌어하는 거 같다? 장난감 자동차라도 탄 느낌인 걸까?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엄마는 또 가지런히 놓아둔 밥과 국을 멀리 떼어 놓는다. 아 왜! 나는 다시 그릇들을 엄마 앞으로 당겨 준다.


 “엄마, 다 흘려. 가까이 놓고 드셔야지.”

 “괜찮아. 원래 내가 잘 흘려.”

 

치매가 되기 전에도 이러셨던가? 내 기억으론 아니다. 엄마는 밥 한 숟갈 입에 넣고 반찬 하나 입에 넣고 하늘을 쳐다보며 우물거린다.


 “왜 고개를 들고 밥을 먹어?”

 “응, 흘릴까 봐.”

 

엄마도 흘리는 게 신경 쓰이는구나. 먹기 편하도록 계란 프라이를 조각조각 잘라 엄마 옆으로 놔드렸다. 엄마는 다시 그걸 멀찍이 밀어낸다.


 “얘, 너도 먹어.”


천진한 엄마 말에 나는 기어코 목소리에 힘을 줬다.


 "내 건 여기 있잖아요!"


하, 나는 심술궂은 딸이다. 매번 짜증이 치솟는다. 손자가 옆에 있는데도 말이 곱게 안 나간다.

 

“여기서 엄마만 잘 드시면 돼. 나도 한새도 알아서 잘 먹을 수 있어. 그니까 제발 밀지 좀 말고요.”

 

반찬을 양보하는 엄마에게 나는 왜 화가 날까. ‘내가 어릴 때 진작 좀 그러시지.’ 순간 터져 나오는 속엣말에 화들짝 놀랐다. 정작 관심이 필요할 때는 살뜰하게 챙겨준 적이 없으면서 오십 넘은 딸에게 무슨 짓이야, 하는 묵은 원망. 아직도 나에게 그런 감정이 남아있다니. 진즉 극복한 줄 알았다. ‘치매 노인’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멀쩡하기를 바라는) 나의 엄마’로 바라보는 오류. 나는 자꾸 거기에 걸려 넘어진다.


엄마는 아마도 식탁 앞에 앉을 때 의자를 빼내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는 것 같았다. 앉은 뒤 다시 당겨야 한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거다. ‘식탁에 앉기’라는 과정에서 반만 알고 반은 잊어버렸다. 몸을 비스듬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앉을 땐 그게 편한데 앉고 나면 다음 순서는 또 까먹는다. 밥을 먹기 위해서 몸이 식탁을 마주 봐야 한다는 걸. 가까이 놓인 접시는 손에 걸리적거린다. 그래서 일단 멀리 밀어놓는다. 덕분에 음식을 집어 먹기가 불편하니 자꾸 흘린다. 하지만 다시 접시를 당기면 된다는 것은 모른다. 그녀의 독특한 식사법은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엄마의 몸과 마음은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를 떠돈다. 우리 집에 오기 전에는 언제 딸네 집에 가느냐고 서둘고 우리 집에서는 언제 아들 집에 가느냐고 묻고 또 묻는다. 치매란 현재를 시커먼 블랙홀에 던져버리는 병이다. 이 순간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에게 삶이란 얼마나 불안하고 혼란할 것이냐. 마치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 아닐까. 나야말로 엄마의 현재를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화를 낼 게 아니라 엄마의 망각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 그저 의자를 당겨주고 몸을 돌려주고 반찬을 앞에 놓아주면 되는 것이다. 참 쉬운 건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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