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제주도민이 겨울을 나는 법

삼월이, 그녀가 그립다

by 소율


제주의 겨울이 이럴 줄 몰랐다. 아니 알았다. 알고는 있었는데 겪어보니 예상 밖이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을. 날씨가 내내 흐리고 바람은 매일 심하게 분다. 해라도 좀 자주 나면 좋으련만. 맨날 회색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라니. 북유럽이나 알래스카도 아니고 대한민국 남쪽 섬에서 햇빛이 부족해 우울하게 생겼다. 난방이 LPG 가스여서 아끼고 아껴 써도 무시무시한 청구서가 날아온다. 어릴 적 웃풍이 심했던 슬래브 지붕 집 이후, 실내에서 이렇게 춥게 지내기는 또 처음이다. 거실에서 손이 시리다면 말 다 했지.


12월의 한가운데 15일에 들어와 꽉 채워 두 달. 12월, 1월, 2월 석 달의 겨울을 나는 중. 풀 옵션이 아닌 집이라 큰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장만하느라 한 달 반이 절로 갔다. 돌아보면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달까. 이사하던 날부터 곰팡이와 보일러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사람이 살게끔 집안을 만드느라 고맙게도(!) 겨울의 절반이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그 후 2월, 혼자서 동쪽 마을 구좌읍에서 겨울을 통과하는 지금.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부터 확인한다. '바람 초속 7미터, 최고 기온 6도.' 평균적인 날이다. 기온은 아주 가끔 영도나 영하 1도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대개 영상을 유지한다. 바람이 5미터 이하면 잠잠한 편이고 8미터까지는 보통, 10미터가 넘어가면 밤새 주방 환풍기가 덜컥거린다. 그런 날은 자체 외출금지. 그밖에 눈도 자주 온다. 일설에 의하면 그나마 올해는 눈이 적은 편이라나. 그럼 도대체 많이 오는 해는 어떻다는 거지?



며칠 전 역시 흐리고 찬 바람이 심하던 날, 기특한 생각을 해냈다. 세화리에 도서관이 있었다! 이름도 멋들어진 동녘도서관. 그동안 책을 한 번 빌렸었다. 그때의 한가하던 서가와 책상이 떠올랐다. 거길 가면 난방비 걱정 없이 일을 할 수 있겠지? 당장 노트북을 챙겨 들고 차를 몰았다. 15분 정도 걸린다. 역시 서가 옆 책상에 단 한 사람만 있을 뿐. 조용하고 따뜻했다.


2시쯤 슬슬 배가 고팠다. 차는 놔두고 동일주 도로를 가로질러 읍내로 걸어갔다. 따순 국물이 간절했다. 밥보다는 고기 국수가 좋겠다. 그런데 동네 국숫집은 안 나오고 (관광객이 드나드는) 멀끔한 쌀국수 식당이 나타났다. 바람은 휘몰아치는데 더 찾기도 귀찮고. 오늘은 쌀국수의 날인가 보다. 베트남에서야 우리 돈 2천 원이면 뒤집어쓰지만 여기서는 1만 3천 원. 동네 주민으로선 만만치 않은 식비였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돌아와 5시까지 일을 했다. 이제 집에 갈 시간. 어두울 때 운전하기는 정말 싫거든. 가능하면 해지기 전에 귀가하는 것이 나만의 철칙이다. 나름 괜찮은 하루였다. 그런데 왔다 갔다 기름값에 점심값을 더하면 그거나 가스비나 마찬가지인가.


다음날은 오랜만에 동백동산을 걷고 싶었다. 이삼일에 한 번은 가는 사랑하는 곶자왈이다. 지난주는 과천 집에 다녀오느라 못 갔고 이번 주도 뜸했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아, 잔뜩 흐린 하늘에 한숨이 나온다. 나뭇가지들이 거세게 흔들린다. 역시 춥고 흐린 보통의 날이군. 나가기 싫다아. 오늘은 꼭 걸으려고 했는데 어쩐다?


갈까 말까 망설이던 중. 머릿속에 불이 반짝 들어왔다. 땅끄부부가 생각났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한여름과 한겨울에 집에서 많이 했던 유튜브 운동이었다. 그걸 잊고 있었네! 나는 노트북에 땅끄부부의 만보 걷기 동영상을 틀었다. 한 시간짜리 운동인데 실제론 6천 보 정도 나온다. 팔다리를 흔들며 열심히 따라 했다. 뻐근하던 어깨도 풀리고 좋은 걸! 동백동산 대타로 제격일세.


2월의 끝자락, 아직 겨울이 물러가지 않았다. 제주도라 일찍 봄이 올 줄 알았는데, 구좌읍 이곳은 막상 그렇지도 않다. 삼월이, 그녀가 와야 진정 봄이 되겠구나. 평년보다 춥다는 올해 제주도. 알고도 힘들고 모르고도 힘든 초보 도민의 겨울나기. 이렇게 저렇게 얼렁뚱땅 넘기고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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