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 제주도에서 평범한 도시로 피서를 왔다

덤벼, 시원하니까 다 봐준다!

by 소율


진짜 좋다, 덥지 않아서!


화요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공기가 뜨겁지 않다?? 그늘에 서있으면 시원하기까지 하다??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 여겼지만. 오늘까지 연속 4일째 덥지 않다. 육지엔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온 모양이다. 이번 방문은 6박 7일. 화 수 목에 병원 진료, 출판사 미팅, 작가들 모임이 있었다. 담 주 월요일에 요양병원에 계시는 엄마께 면회를 가기로 했다. 실은 모든 일을 이번 주 안에 몰아넣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정이 길어졌다. 기왕 늘어진 거, 일요일에 친구들도 만난다.


제주에서 과천 집에 거의 매달 온다. 심지어 한 달에 두 번 (피치 못하게) 올 때도 있다. 그럼 다음 달은 건너뛴다. 집에 와도 짧고 바쁘게 할 일만 처리하고 돌아가는 편이었다. 비싼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제주살이를 하는데, 집에 자주 또는 오래 머무는 건 타당치 않은 일이었다. 행원리에서 김녕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김포공항에서 미팅 장소(또는 병원)로, 거기에서 과천 집까지. 여정은 번번이 나를 지치게 한다. 정말 이렇게 자주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젠 비행기 타는 게 지겹다.


서울대공원의 오솔길


엄마 면회가 오늘(금요일에) 가능했다면 나는 분명 저녁쯤 돌아갈 것이다. 화 수 목 금 4일을 숨 돌릴 틈 없이 뛰어다니다 비행기 안에서 나가떨어질 테지. 오늘내일 이틀 비는 시간이 소중하기도 하여라. 길게 잡길 참 잘했어. 딱 맞춰 날씨도 시원하고 운이 따랐다. 오늘 아침 7시 반에 대공원을 돌았다. 기온이 23도여서 걷기에 좋았다. 문을 열고 나가 바로 걸을 수 있는 우리 동네, 새삼스레 기특하네.


한 시간을 걷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침을 차려 먹었다. 제주살이를 떠나기 전의 일상이다.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냥 이대로 쭉 집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 제주도민 맞아? 나는 휴양지 제주도에서 평범한 도시로 피서를 온 것 같다. 피서가 별 건가. 시원하고 안락하면 된 거지. 이게 나의 여름휴가인 셈이다. 한시적 제주도민의 여름휴가는 바로 본가에서 보내기. 크크크. 역귀성이닷!


이른 아침의 서울대공원


나는 집에 온 후로 틈틈이 집안일을 했다. 부엌을 정리하고 떨어진 생활용품들을 사다 채웠다. 화장실 변기의 누런 때와 벽에 핀 곰팡이를 닦아내었다. 겨울 이불부터 침대 시트까지 침구류 전체를 하나씩 빨고 있다. 집안 청소도 꼼꼼히 다시 했다. 아빠와 장성한 아들이 생활하던 집은 두 기계, 즉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가 하는 일을 제외하고 나머진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전엔 급히 왔다가는 통에 살필 경황이 없었고 나도 할 맘이 없었다. 내심 두 집 살림을 도맡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엄마(혹은 아내)가 없으면 두 남자가 살림을 책임져야지. 남편과 아들도 나의 제주살이에 적극 찬성했으니까. 남편이야 애초에 가사를 신경 쓸 사람이 아니다. 살림은 거의 아들의 몫이었다. 저는 나름 한다고 했겠지만 집은 날로 엉망이 되었다네.


오래 머무는 차에 그동안 못 본 척했던 살림에 손을 댄다. 뭐 날도 시원하고 시간도 있고요. 너무 방치하면 나중에 돌아와 내가 더 힘들지. 제주에서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을 부크크로 출간했다. 코로나로 연기되었던 베트남 여행 에세이 <진짜 베트남은 소도시에 있다> 작업도 막바지 단계. 책 2권이 끝나가니 한결 여유롭다. 겉보기엔 쌓인 집안일에 힘들 것 같지만 나는 어쩐지 즐겁기만 하다. 이런 휴가도 나쁘지 않은걸?


모든 게 날씨 덕이다. 덤벼, 시원하니까 다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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