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름을 붙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다. 김녕에서 세화까지 해변도로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해수욕장이 아닌데 차들이 모여있어 눈여겨보았다. 언덕진 풀밭 아래 하얀 모래사장과 검은 바위. 옥색과 코발트블루가 어우러진 얕은 바다. 색깔만 보면 월정 바다와 김녕 바다를 섞어놓은 듯. 작고 아늑했다. 도민만 알 것 같은 숨겨진 장소. 나는 그곳이 퍽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나는 바다를 적극적으로 즐기지 않는다.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가슴 깊이만 되어도 심장이 벌렁벌렁,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패닉에 빠진다. 남편과 함께 간 필리핀 팔라완 여행. 잠깐의 맛보기 스노클링 시간 중 나는 절대로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구명조끼 따위를 입었어도 내 공포증엔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기가 찬 얼굴이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스노클링 안 하겠다고 했잖우.
남편은 수영할 줄 알지만 짠 바닷물에 피부가 가려워진다. 민물 수영장 외엔 싫단다.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에메랄드빛 바다를 감상하며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최고지!" 이것이 내가 바다를 대하는 지극히 소극적인 방법이다. 이래저래 물 또는 바다보다 낮은 산 또는 숲과 친할 수밖에.
장마철엔 오히려 그럭저럭 숲길과 오름을 걸을 수 있었다. (마른장마여서 그랬나?) 하지만 한여름이 되었다. 이젠 못 간다. 이유는 다른 글로 설명할게요. 마음껏 걷지 못하니 운동 부족. 에어컨 틀어놓고 거실에서 실내 걷기를 한다만, 성이 차진 않는다. 그냥 걷기는 심심해서 보통 넷플릭스를 켜놓는다. 만보를 채우고도 밤늦게까지 드라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네? 아 이건 아닌데.
얕고 예쁜 바다가 차로 10분 거리, 바로 집 앞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 바다랑 친해볼까, 싶은 마음이 아주 약간 드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냥 가서 물속을 걷기만 하는 거야. 아쿠아로빅 대신 아쿠아 워킹인 게지. 그것도 운동이라면 운동이지 않을까.
혹시 몰라 가져온 래시가드를 실제로 입게 될 줄이야. 노란색 이마트 가방 안에 수건, 마실 물 한 병, 너불거리는 모자, 등산 방석 등을 집어넣었다. 따로 큰 페트병에 수돗물을 채웠다. 해수욕장이 아니라서 샤워장이 없다. 발의 모래만 씻을 작정이었다. 커다란 우산도 하나 챙겼다. 쉴 때 햇빛을 가려야 하니까.
차를 몰아 행원 바다에 도착. 해안도로 양옆에 주차할 공간이 남았다. 인근의 유명한 해수욕장처럼 붐비진 않았지만 그래도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커다란 여름용 스카프와 모자를 파는 트럭이 한 대. 저건 지난번에도 보았다. 고정적으로 여기서 장사를 하나보다.
나는 가방과 우산을 바위 옆에 놓아두었다. 스포츠 샌들을 신은 채 바다에 발을 담갔다. 시원하다!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젊은 부모가 가장 많았고 친구,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도 보였다. 혼자인 건 나 하나로세. 일행이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나의 래시가드 윗도리는 긴 팔이고 아래는 짧은 반바지. 바닷물이 다리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날씨가 아주 더운 날은 아니었다. 30도가 되지 않았고 바람이 불었다. 발목부터 천천히 종아리, 허벅지, 허리, 가슴까지 적시었다. 가슴이 한계,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물이 빠진 시각이었을까, 많이 걸어가도 바다는 얕았다. 나는 허벅지 깊이의 바다를 몇 바퀴 돌았다. 의외로 아쿠아 워킹이 재밌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바위 쪽으로 나와 물을 실컷 마신 후, 옆쪽 바다를 정찰했다. 사람들이 노는 곳은 정면이다. 왼쪽도 움푹하게 바닷물이 들어온다. 너무 낮아서인지 노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이 미지근했다. 나는 영역 표시하듯 그곳도 몇 바퀴 걸었다. 다시 바위로 가서 등산 방석을 깔고 앉았다. 휴식 시간. 우산을 쓰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물론 틈틈이 사진도 찍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집으로 돌아가자. 가져온 수돗물로 샌들과 발을 씻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윗도리는 금방 말랐다. 바지 쪽이 신경 쓰였다. 차에 타면 운전석이 젖을 것 같았다.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리자니 너무 시간이 걸린다. 세심한 준비물이 필요함을 느꼈다.
일단 튜브부터 있어야겠다. 수영을 못 해도 튜브만 타면 문제없잖아. 아쿠아 워킹보다 훨씬 재밌을 거야. 차에 타기 전 젖은 반바지를 갈아입을 치마도 하나. 모자도 이것 말고 물에 젖어도 괜찮은 다른 게 필요해. 아쿠아슈즈와 워터프루프 선크림도 있어야겠네. 그리고 최종 목표를 잡았다. 머리를 바닷속에 집어넣는 것. 내가 젤로 무서워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1초라도 도전해보고 싶다아. 그러려면 물안경도 사야겠다.
으, 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다 놀이라곤 도통 해보질 않아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근데 바다엘 얼마나 가겠다고 이렇게 꿈을 꾸시나? 뭐 매일이라도 가시려고?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물을 가까이하지 않아서 물이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다고. 자꾸 물에 들어가고 물이 익숙해지면 최소한 이전보다 덜 무섭지 않을까. 아직 수영을 배울 용기는 없지만 말이다. 조금만 친해지는 정도라면 겁쟁이인 나라도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