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는 어려워
제주살이를 하면서 배우고 싶었던 운동이 있었다. 승마였다. 승마라니, 귀족 스포츠 아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비싼) 돈이 들어가는 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평생 꾸준히 걷기를 해왔다. 걷기는 아무 때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즉 접근성이 탁월하다. 또한 단순함에 비해 만족도가 꽤 높은 편. 물론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승마란 나와 조금의 인연도 없는 운동이었다. 다만 과천에서 오랫동안 살았기에 경마장과 말, 이 두 가지가 기분상 낯설진 않았다. 한 번도 경마를 보러 간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코로나 이전, 가끔 경마장에서 승마 교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가 지원을 받아 강습료가 매우 저렴하다고 했다. 그때는 흘려들었다. 그나마 코로나가 엄습한 2020년부터 프로그램은 사라졌다.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던가. 구좌읍 행원리에 연세를 얻었다. 나는 말이 아니지만 제주로 왔고 제주엔 이미 말이 많으니 승마를 배우기 수월할 것 같았다. 수도권보다 저렴하게 승마를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50 중반에 승마가 과연 가능할까? 그러던 차에 블로그에서 승마에 매료된 부부의 사연을 읽었다. 제주로 이주한 블로거가 뒤늦게 말에 빠져 승마를 배웠단다. 급기야 대학의 관련 학과에 새내기로 입학했다는 것이었다. 부부가 쌍으로.
대단한 이야기였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 생겼다. 전문 직업인이 될 것도 아니고 취미로 배우는 정도라면. 제주도에선 널린 게 승마장이다. 관광객들은 체험 승마라고 잠깐 말에 올라타 사진을 찍거나 숲길을 걷는 코스에 참여한다. 나는 이래 봬도 도민이니까 체험 말고 강습을 받기로 결심했다.
승마장은 참 많은데 어딜 골라야 하나? 말이나 승마에 대해 어린이 혹은 유치원생 수준인 나는 물어볼 지인조차 없었다. 인터넷을 헤매던 중 한 승마장에 대한 후기를 보았다. 규모가 있는 편인 데다 체험 승마 겅험이 좋았다고 한다. 어차피 왕초보인데 까다롭게 고를 필요가 있을까? 아니 그래야만 했다는 건 나중에 깨달았다. 나는 일상에선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편인데 반해 여행에 대해선 대차게 저지르는 습성이 있었다.
겨울이 지난 3월 말, 누군지 모를 사람이 추천한 승마장을 찾아갔다. 마침 집에서 차로 20분. 매우 가까웠다. 운동이나 취미를 시작할 때 거리는 상당히 중요하다. 가까울수록 빠질 확률이 낮고 자주 가게 된다. 레슨은 보통 10회 단위로 끊는다. 직원, 팀장님은 먼저 1회 레슨을 받아보고 결정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오 합리적이네.
나는 20대로 보이는 여자 코치를 따라갔다. 시키는 대로 조끼와 헬멧을 쓰고 종아리에 부츠 비슷한 것을 둘렀다. 말 앞에 서자 조금 두근거렸다. 내가 이 말을 잘 탈 수 있을까.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었다. 우리는 원형 모래사장에서 시작했다. 나는 말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다.
말을 타는 방법부터 배웠다. 말에 오르기 전 등자 길이를 자기 겨드랑이까지 오게 맞춘다. 왼손으로 고삐와 갈기를 잡고 등자에 왼발을 넣는다. 몸을 위로 띄워 오른발을 들어 올려 등자에 끼운다. 말 위에서 고삐를 양손으로 나눠 잡는다.
코치는 모래사장에 난 길을 따라 말을 원형으로 돌게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코치가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자세가 바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그녀는 두어 번쯤 지적하다 말았다. 뭐랄까, 정신이 딴 데 가있는 느낌? 원래 강습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가. 승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수업이 제대로 되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맛보기 강습이라 가볍게 하는 걸... 테지? 진짜 레슨은 다르... 겠지?
레슨이 끝나고 다시 회원 등록을 관리하는 팀장님과 마주 앉았다. 그녀는 친절하고 자상하게 승마와 레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레슨 시간은 전날까지만 정하면 되고 코치는 여러 명이라 매번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 잘 맞는 코치가 생기면 그이에게 계속 레슨을 받으라고 알려주었다. 코치가 자주 바뀐다는 점이 걸렸지만 여러 곳을 찾아가 비교하기는 사실 귀찮았다. 무엇보다 팀장님이 믿음직스러웠다. 아무튼 해보자!
두세 명이 한 팀으로 같이 배우면 강습료가 저렴해진단다. 나 같은 한시적 이주민이 시간을 맞출 동행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나는 일대일 레슨을 신청했고 일주일에 두어 번씩 강습을 받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것부터 잘 되지 않았다. 특히 다리의 자세를 유지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무릎으로 말의 목을 누르지 않아야 한다. 종아리와 발로 말을 감싸 안듯 붙이고 힘을 빼야 한다. 허벅지 안쪽 근육인 내전근에 힘을 줘야 자세가 바로잡힌다. 내 다리에 내전근이란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날마다 달라지는 코치진. 처음 만났던 여자 코치, 젊은 남자 코치, 나이 지긋한 남자 코치. 무슨 레슨 내용이 사람마다 완전히 달랐다. 타고나길 운동신경이 없고 저질체력에 나이까지 많은 나는, 기초인 평보조차 잘 되지 않았다. 무식한 내가 생각해도 평보부터 차근히 익혀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젊은 남자 코치는 다짜고짜 '경속보'를 시켰다. 통통 뛰는 말 위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승마의 속도를 설명하자면 느린 순서부터 '평보> 좌속보> 경속보> 구보> 습보'까지 있다. 말발굽 리듬에 맞춰 몸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하는 건 내게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겨우 2회 차에 말이다. 솔직히 10회를 채워도 될까 말까 한 경지처럼 느껴졌다.
레슨이 끝나고 말에서 내리는데 다리가 후둘후둘 떨려 걷기가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허벅지가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평보도 못하는 사람에게 경속보라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강습생의 상태는 아랑곳 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수업이 황당했다. 도통 체계가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자 코치로 말하자면 불성실의 대명사였다. '나는 이 레슨이 하기 싫어요!' 하는 티를 팍팍 냈다. 건성건성 대충대충. 설명도 없고 지적도 없고 시간만 때웠다. 나는 그저 말에 올라타 있을 뿐 이것 역시 제대로 된 레슨이 아니었다. 아이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처음 1회성 강습에서 보였던 태도는 그녀의 본모습이었던 게다. 본 레슨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나이 든 남자 코치는 또 어떤가. 막무가내 그 자체였다. 말에게 지면 안 된다, 말을 이겨야 한다, 고삐를 세게 당겨라, 힘을 주어라. 그는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귀가 따가워 죽겠네. 내내 정신이 없고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방식이었다. 내가 이 건장한 말을 어떻게 이겨요? 그동안 받은 모든 레슨과 정반대의 설명이었다. 누구 말에 장단을 맞춰야 하나??
내가 겪은 세 명의 코치는 코치로서 아직 일을 하면 안 되는 상태였다. 즉 누군가를 가르칠 준비가 되지 않은, 말하자면 '코치를 지향하는 후보들'인 셈이었다. 승마장 측에서 자꾸 코치를 바꾸는 이유가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일종의 훈련용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려 일대일 강습으로 제일 비싼 회비를 냈는데 이런 취급이라. 불만이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