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눅눅하고 축축 처졌다. 장마철이어서인지 아님 그럴 때가 되어서인지. 증상이 시작된 건 약 한 달쯤 되었다. 이사를 가려고 엉덩이를 들썩였던 때부터인 것 같다(결과적으로 치솟던 엉덩이는 살포시 내리눌렀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았다. 그분이 오신 것이다. '우울감'이라는 불청객. 한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분과 대치 중일 확률이 높다. 그분은 보통 유튜브 알고리즘과 짝을 이룬다. 그분이 내뿜는 불길한 기운은 친절한 알고리즘이 달랜다. 둘의 관계는 파마약과 중화제,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등과 비슷하다.
'지금 많이 힘들지? 괜찮아, 너는 가만히 있어. 생각하려고 애쓰지 마, 너한테 딱 맞춤으로 해결해 줄게. 이게 바로 네 취향이야. 뜨는 걸 누르기만 하라고. 쉽지? 시간이 아주 잘 갈 거야. 고민 따위는 잊어버려.'
끝없이 나를 끌고 다닌다. 핸드폰을 어쩌다 놓으면 간간이 티브이가 달려든다. 대부분 홈쇼핑인데 채널은 엄청나게 많다. 리모컨을 누르고 또 누른다. 1부터 100까지 다 눌러본다. 재미없는데 아무거나 틀어놓는다. 왕왕왕 버릇없는 개처럼 화면이 짖는다. 18년간 티브이 없이 살았던 내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된다. 다음엔 넷플릭스 차례. 웬만한 건 거의 본 것 같고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틀어본다. 이 드라마 조금 보다가 에잇, 저 드라마로 갈아탄다.
이 시기엔 책 읽기도 글쓰기도 걷기도 일도 만남도 허공에 멈추고 만다. 달달한 간식만 혀에 달라붙는다. 덩달아 옆구리가 두툼해진다. 제주 일 년 살이의 장르가 '로맨스' 하나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생활'에 '제주'만 더한다고 '만사형통'이란 공식이 성립하진 않는다. 현실과 이상은 다른 법. 내 경우만 해도 다큐, 드라마, 가족, 스릴러, 코믹, 모험, 스포츠, 공포까지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다.
그동안 남편이 신기해할 정도로 즐겁게 지냈다. 혼자서, 시골에서, 심심하지 않냐고, 지겹지 않냐고, 그는 종종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괜찮다고 했다. 이사하고 살림 장만하느라 첫 번째 고비였던 겨울을 정신없이 보냈다. 매서운 바람에 힘은 들었지만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 후 반 년, 6월 중순까지. 온라인 글쓰기 모임 <딱세줄>을 운영하고 숲길과 오름을 걷고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간했다. 오히려 바빠서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는 게 불만이었다.
두 번째(이자 최대) 고비는 습한 장마철. 세계여행 중 찜통 같은 우기의 동남아에서 진저리 나게 고생을 한 탓일까. 혹은 유방암 이후 체질이 바뀐 탓일까. 언젠가부터 내 몸은 습기와 더위에 과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툭하면 태업과 파업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예전에는 피곤하면 입안에 자주 탈이 나고 안면 통증이 생겼다. 이삼 년 전부터는 뜬금없는 두통에 시달린다. 여름은 제주살이에서 가장 걱정했던 시기였다.
예민해진 내가 습기 가득한 장마와 내리쬐는 땡볕을 포함한 계절을 나는 법. 에어컨을 덥지도 춥지도 않게 살며시 틀어놓고 '몸 님'을 받들어 모셔야 한다. 또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진 길을 가볍게 산책하면 '몸 님'은 매우 흡족해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서 습하고 무덥기로 유명한 최남단 제주도라오. 집에만 있자니 답답하고 나가자니 날씨가 겁난다.
어느 순간 말도 안 되는 충동이 일었다. 다 때려치울까? 남은 연세 5개월을 누군가에게 승계하고 과천으로 돌아갈까? 다행히 충동은 곧 사라졌다. 내가 별생각을 다 하는구나, 잠시 영혼이 집을 나갔구나. 승계하고 짐을 정리하는 과정도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더구나 이런 기분으론 당치도 않다.
사실 우울감의 원인이 날씨 탓만은 아니다. 7월 안에 출간하자던 베트남 여행기 일정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상황, 이제 제주도 동쪽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고, 혼자인 게 슬슬 지겹기도 하고, 시골 생활이 단조롭기도 하고. 아무리 숲길과 곶자왈과 오름을 좋아한다지만 조금 지친 것 같다. 엇, 남편이 물어보던 그것들이 전부 해당되네.
하지만 제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역시 일 문제. 이유 없이 멈추어 있는 출간 작업 때문이다. 자꾸 물어볼 수도 없고 욕심껏 재촉할 수도 없다. 와중에 다른 일을 손댈 수도 없다. 애매한 진공 상태. 불안하고 답답한 을의 신세로다. 아마도 날씨는 그것에 촉매제 역할을 했을 터. 다행히 다음 주에 출판사와 온라인 회의 약속이 잡혔다. 어떻게든 진행이 되겠지.
우울함에 빠지는 게 꼭 사치 같았다. 남들이 그리 부러워하는 제주살이인데. 가열차게 재미있게 알차게 지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느껴진다, 마치 누가 나를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양. 혹은 제주를 떠난 뒤에 스스로 후회할까 봐. 유튜브와 티브이, 넷플릭스 세 개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세화 읍내의 동녘 도서관에서 추리소설을 잔뜩 빌려왔다. 무려 아홉 권. 누가 범인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파다 보면 우울감을 살짝 속일 수도 있으니까? 세 권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배신자였고 나머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이 휴가를 왔다. 내내 마른 장마였다가 아들이 온 후로 종일 흐리거나 비. 하필 운도 없지. 아들과 소소하게 5일을 보냈다. 아이는 매일 아침 늦게까지 잤고 내키면 해변 도로를 뛰었다. 우리는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오름에 올랐고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날 숲길을 걸었다. 나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아들 고집에 져준 것이지. 하루는 동쪽 해안 끝 섭지코지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물 흐르듯 시간이 갔다. 아이가 돌아갔고 나는 다시 눅눅해졌다.
그런데 뭔가 달라졌다. 감당할 만해졌달까? 둘이서 땀에 젖어 보낸 날들이 묘하게 힘을 주었다. 우울감이 눈에 띄게 옅어졌다. 터널 끝에 다다랐나, 조금씩 빛이 보이는 듯. 월요일 아들이 올라간 후, 화요일엔 동거문이 오름, 목요일엔 다랑쉬 둘레길, 금요일엔 좌보미 오름 일부와 둔지 오름에 다녀왔다. 실은 고마운 바람이 훨훨 불어서 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장마철은 지나간 건가? 이쯤에서 그만 물러가길.
목요일은 원래 좌보미 오름을 가려고 했다. 도무지 입구를 찾지 못해 주변 도로만 뱅뱅 돌다가 실패했다. 다음날 다시 도전, 기어이 길을 찾아냈다. 내비를 바꾸었더니 좁은 샛길을 콕 집어내더라고요. 며칠 전까지 사라졌던 의욕이었다. 기이하게 의욕이 솟았다. 해외는 물론이고 심지어 제주에서도 참 길을 못 찾는다 연신 감탄하면서(이런 감탄은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실은 우울함 속에서도 계속 되뇌었다.
'단점 말고 장점에 집중하자, 할 수 없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동쪽 지역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오름의 고장'이라는 거지. 멀리 있는 서쪽 명소를 아쉬워하는 대신 동쪽 오름만큼은 다 가보자. 오름엔 햇빛도 바람도 쉬이 머문다. 뜨거우면서 시원하다. 속이 탁 트이는 맛이 있다. 혼자라고? 그게 어때서! 외로움은 이미 오랜 친구가 아니던가. 내 여행(또는 일상)이 언제는 혼자가 아니었더냐. 혼자여서 좋은 일을 하면 그만이지.
우선 글이 많이도 밀렸다. 핸드폰 안에 쌓이기만 하는 사진을 어쩔겨. 다리를 움직이는 김에 손가락도 힘차게 달려 볼까나. 발만 담갔던 행원 바다에 어깨까지 집어넣어 볼까? 서랍에서 잠자는 래시가드가 생각났다. 몇 년 전에 사놓고 건드리지 않았다. 평생 물을 무서워해 수영을 못 배웠다. 얕은 바닷물 속에 가만히 들어가 있는 것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저녁 7시. 제법 바람이 분다. 경험상 바람 없는 제주도의 여름날은 재난이나 다름없다. 습도는 어쩔 수 없을 지라도 바람만큼은 제발 불어다오. 날씨의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