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
아직도 어려운 숙제
안양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그냥 과천 뉴코아 아웃렛 수선실에서 해결이 날 줄 알았다.
“아, 이건 우리가 못 해드려요, 기계가 없어요.
안양 중앙시장에 가셔야 할 수 있어요.
과천, 평촌 다 이거 하는 데는 없어요. “
이거란 ‘단추 구멍’을 말한다. 내게는 몇 년 묵은 핸드메이드 코트가 있다. 핸드메이드 유행의 끝물에서 단돈 오만 원에 건진 옷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추가 없다. 달랑 훅 하나만 달려있어 허리띠로 묶는 스타일이다. 이러니 앞섶이 야물딱지게 여며지지가 않는다. 막상 겨울이 되면 추워서 못 입었다. 이번에야말로 코트를 고쳐서 입어보리라 결심했는데 이런, 안양까지 가라네.
하늘이 끄물끄물했다. 눈인지 비인지 뭐라도 올 거 같은 날씨. 혹시나 몰라서 우산을 챙겨 오긴 했다. 아직도 이석증 약을 먹고 있었고 입안이 부르튼 것도 낫지 않았다. 안양까지 다녀오기는 좀 무리가 아닐까. 하나 내친김에 가야지 언제 또 갔다 오겠나? 다음 주에는 이사를 한다. 그 와중에 병원 예약이 두 개나 잡혀있다. 그것뿐이랴? 이번 주에도 입주 청소가 있다. 업체에서 하지만 주인이 가봐야 한다. 이사 가기 전에 밥 한번 먹자는 약속도 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짐 정리에 집 단장에 정신없겠지. 코트를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올 겨울도 넘겨버릴 것이 뻔했다. 이러다 코트 썩겠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불어댔다. 영하의 날씨는 아니었다. 그래도 싸늘하니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른 중앙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단추 구멍 만들어주는 데가 어디여요?” 물어서 찾아간 수선집. 안경을 코끝에 걸친 할머니(라 하면 화내실까?)와 젊은 딸이 일을 한다. 딸은 간단한 수선을 맡고 엄마는 기술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바늘에 실 꿰려면 한 번에 착 안 되는데. 저 할머니는 대단하시다. 재봉틀 세 대를 종횡무진 누볐다. 진짜 기술자다. 주인장의 손놀림에 감탄하던 중 갑자기 진눈깨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눈깨비는 곧 비로 변했다.
“어이구, 지랄이네. 3시부터 온다더니 왜 벌써 오고 난리야?”
“그러게요, 말을 안 듣네요.”
“나 참, 이 놈의 날씨가 말을 안 들어.”
할머니가 단추 구멍을 만드는 동안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코트 수선 때문에 갑자기 안양엘 왔으니 알아서 점심을 챙겨 먹으라는 내용이다. 이 녀석의 고질병이 또 나온다. 엄마 올 때까지 안 먹고 기다리겠다, 늦어도 엄마 오면 같이 먹겠다, 이런 대답. 혹은 알았다고 하고는 결국 굶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 마자 밥 달라고 하는 수법. 그러면서 하는 변명이 가소롭다.
“엄마 없을 땐 이상하게 배가 안 고파.
그러다가 엄마 얼굴만 보면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구. 정말이야.”
오늘은 내가 한 수 받아쳤다.
“엄마도 이거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겠다.
여기서 점심 사 먹고 갈 거야.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
그러자 이번엔 애원조로 말한다.
“그럼 점심은 알아서 먹을 테니까 맛있는 것 좀 사 와요. 꼭!”
“야, 비는 쏟아지고 가방은 두 개에다 우산까지 들고서, 어디 가서 맛있는 걸 사니?
맛있는 거 들고 갈 손도 없다. 그리고 엄마, 무지 피곤해. “
말은 이리 했다. 그러고 나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서 시장 안을 죄다 둘러보고 있는 나. 그놈의 맛있는 걸 찾기 위해서. 딱히 마땅한 게 없었다. 오, 녹두빈대떡 노점 발견! 세장을 샀다. 일회용 용기에 하나씩 따로 포장해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이거 의외로 무겁다. 코트를 넣은 종이가방, 외출용 가방, 빈대떡 봉지, 우산까지 받치려니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른손으로 무거운 거 들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또 빵집을 찾고 있다. 전에는 여기 시장 안에 빵집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제과점이 아니라 옛날 빵을 파는 데였다. 수수한 양배추 샐러드 빵을 사고 싶었다. 가끔 그렇게 못 보던 빵을 사다 주면 아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빵집은 못 찾았다. 대신 버스 정거장 앞 파리바게트를 갔다. 아들이 즐겨먹는 고로께와 다른 빵 몇 개를 샀다. 가방은 더 무거워졌다.
온몸이 지쳤다. 눈알도 뻑뻑하고 두통도 있고 무엇보다 어깨와 팔이 너무 아팠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동안 무리해서 이석증도 재발했는데 아직 그게 다 낫지도 않았는데 초고 작업도 1주일 넘게 손 놓고 있는데, 나는 뭘 하는 거지? 나를 가장 아끼겠다, 사랑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내 몸을 왜 이리 막 대하고 있는 거지? 고질병의 당사자는 바로 나였다. 말로는 안돼 하고서 몸은 그걸 하고 있는 병. 이제는 남편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 힘들어서 못해’라고 행동한다. 유독 자식 앞에서만은 예외다. 나도 모르게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으니. 녀석의 ‘엄마 밝힘증’은 내가 만들었고 내가 키우고 있었다.
맨날 “너 이제 엄마로부터 독립해라.” 노래를 부르면 뭐하나? 뒤로는 이렇게 해주면서 말이다. 그동안 내심 아이 의사를 존중하는 괜찮은 엄마라고 믿었다. 실제의 나는 존중을 넘어 너무 허용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남편의 대학시절에 시어머니가 엠티 가방을 싸줬다는 얘기를 듣고 기절초풍한 적이 있었다. 싸준 사람이나 그걸 받은 사람이나 똑같다고 흉을 보았다.
하지만 나도 여행 가서 아이의 고집을 받아준 게 여러 번이었다. 요하네스버그 역에서 노숙할 때, 잠비아에서 말라위로 들어갈 때가 그랬다. 두 번 다 아이는 나중에서야 ‘엄마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걸’ 후회를 했다. 시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엄마였다(마찬가지로 자신이 요구하기 전에 성인 아들이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하는 엄마이기도 했다). 나는 아들이 요구하는 걸 거절하지 못하는 엄마였다. 네팔에서 ‘이럴 거면 너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불호령을 듣고서야 아이는 무모한 고집을 버렸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아이의 예전 버릇이 반쯤은 다시 나온다. 여행에서의 배움을 일상으로 정착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에서나 관성의 법칙이 존재하니까.
나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공부한다고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건 용서가 안 된다. 식기세척기 돌리기,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는 아들 몫이다(백 프로 알아서 하지는 못하고 종종 일러줘야 한다). 이사 가면 부엌이 넓어지니 간단한 요리도 가르칠 생각이다. 아들의 소망대로 알래스카에 가게 되면 꼭 필요한 생존 기술이 될 터이니. 이번처럼 유사시 집에서 혼자 밥 챙겨 먹기는 기본이다.
이 녀석은 애기 때부터 먹는 것을 좋아했다. 아가 시절 누워서 분유 250밀리를 가뿐히 원 샷 하던 실력이다. 자라면서도 반찬투정 없이 아무거나 잘 먹어 이쁨을 받았다. 지금도 밥 먹을 때는 꼭 나를 맞은편에 붙들어 앉혀놓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유독 먹는 일에서 엄마에게 심하게 의존을 한다. 간식을 먹을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엄마가 옆에서 지켜봐 주어야 만족한다.
반면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다. 고등학교 과정이라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다. 게다가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대학을 가겠다고 준비 중이다. 하물며 영어로 하는 공부를 내가 어쩌겠나. 그저 ‘니가 알아서 하거라’라는 말밖에. 저 혼자 공부를 하다가 어떤 부분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런 것만 지원을 해준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겠다. 공부는 엄마가 아예 상관을 안 하니 자연스레 독립이 될 수밖에 없다. 먹는 것은 늘 챙겨주니 엄마가 아프고 힘들어도 요구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해줄 수 없을 때는 안 해 주면 된다. 결국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이제부터 나는 ‘아들의 무리한 요구 거절하기’를 몸에 붙일 것. 나는 아들로부터 아들은 나로부터 서로 독립할 것. 나를 먼저 보살피고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행복해질 것. 나는 나로 인해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 행복한 엄마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하여 자신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 내가 아이에게 줄 것은 그것뿐이다.
아들아, 엄마는 엄마를 가장 사랑할 테니 너도 너를 가장 사랑하면서 살아가거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