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

시간을 빨리 가게 하는 방법은?

by 소율


토요일에 주문해 놓은 부분가발을 기다리고 있다.

주말이 끼었으니 화요일에나 도착하겠지? 아, 빨리 왔으면. 옆머리와 뒷머리만 있는 가발이다. 모자랑 같이 쓰면 감쪽같겠지?


너무 더워서 가발은 애당초 포기를 했었다. 모자 쓰고 거리낌 없이 잘 다니다가도 가끔씩은 나가기가 싫었다. 아무래도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이 신경 쓰이니까. 가끔 우울감이 찾아올 때는 심했다. 우울해서 모자 쓰고 나가기가 싫은 건지, 모자 쓰고 다니기가 싫어서 우울한 건지. 뭐가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1차 항암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머리카락을 열망하게 될 줄은 몰랐다.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할 때도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내 모습이 좀 나이롱환자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 환자 취급을 못 받는 가짜 환자 같다고나 할까? 방사선 치료 7주 동안 다른 환자들은 내 머리를 그렇게 부러워했다. 어떻게 머리가 그대로냐며. 그때마다 난 설명을 해야 했지.


" 방사선을 먼저 하는 중이라 그래요.^^;;

아직 항암을 안 했거든요."


항암이 들어가야 진짜 환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때가 행복한 줄도 모르고 얼마나 어리석었나. 힘든 항암이 다 끝나고도 계속 힘들었던 건, 여전히 빡빡머리라는 거. 추웠던 겨울, 봄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더운 여름이 되니 이것 참. 가발은 더워서 도저히 못 쓰겠고 두건도 덥기는 매한가지다. 추운 계절보다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인다. 차라리 여름에 항암을 했더라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가을, 겨울에는 가발이건 모자건 더 자연스럽게 보이니까.


남편과 아들은 날마다 말한다.


"어, 이제 머리 많이 자랐네!"


자라긴 했지. 한 3센티 정도. 머리카락이 가늘어서 정상적인 머리카락 3 센티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 두피에 딱 달라붙어 여전히 빡빡머리인 걸.


매일 생각한다.


'언제나 모자 벗고 자연스러운 내 머리로 다닐 수 있을까?'


8월 말이면 가능하지 싶었는데, 아, 9월 말은 되어야 할 듯.

며칠 전에 아들 티셔츠 사러 아웃렛 매장에 갔다가 들은 말.


"모자가 참 예쁘네요. 그런데 만드신 모자인가 봐요?"


예쁘다는 말은 장사꾼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거 같고, 만든 티가 팍 났나 보다. 그 말에 은근히 우울해졌다. 뭐 그리 나쁜 말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더라. 모자를 3개나 만들긴 했다. 한동안 만든 모자 쓰는 맛에 즐겁게 외출을 했지. 그중 이 모자는 주름잡은 게 서툴러서 어설프다. 그래도 이게 쓰기엔 가장 편한지라 울 동네서는 제법 애용을 했더랬다. 너무 자신감에 넘쳐 평촌까지 쓰고 나간 게 탈이었나?


이제는 모자고 뭐고 정말 내 머리로 다니고 싶다!!! 그러다 문득 뒷머리 가발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정수리는 뻥 뚫리고 뒷머리만 달린 가발이 있다더라. 검색을 해보니 정말 그런 가발이 있네? 단발 커트 머리로 당장 주문을 해버렸다. 이젠 머리카락 신경 안 쓰고 다닐 수 있는 건가? 통가발보다야 시원하겠지?


머리카락이 없으니 뭘 입어도 태가 안 나고 영 어색하다. 거기에 모자를 쓰면 쬐~금 낫지만 역시 도진개진. 사람에게 머리카락이 있고 없고 가 이렇게 큰 차이일 줄 몰랐다. 가끔은 굉장한 미인일 경우 민머리만으로도 이쁘긴 하다만. 내가 그런 행운을 타고 나진 못했나니. 난 머리카락이 꼭 있어야 된다구~~~


가끔 상상해 본다. 보이시 쇼트커트라도 되어서 모자 벗고 다니는 내 모습을. 얼마나 홀가분할까?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할까? 얼마나 날아갈 듯한 기분일까? 불면증으로 매일 밤 약으로 잠이 들어도, 항호르몬제 부작용으로 불쑥불쑥 열감이 치솟아도, 그저 머리카락만 제대로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일 거 같다.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감도 한 번에 확 날아갈 듯하다.


시간아, 얼른얼른 가거라.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달이 확 지났으면 좋겠다, 고 어린아이 같은 소원을 해본다. 일단은 부분가발에 기대를 해보자. 모자만 쓰던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그리고 시간의 마술을 부려야 한다.


시간을 빨리 가게 하는 방법은?

답 - 재밌게, 미치도록 재밌게 지내기.


이제 7월도 반은 갔고 8월, 9월까지 두 달 반이 남았다. 두 달 반을 어떻게 재밌게 보낼까? 세상에서 재밌다는 소설과 영화를 죄다 찾아서 볼까? 친구들과 매일 만나 수다를 떨어볼까?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바둑을 두어야 하나? 이건 추가로 신선이 있어야 하니까 패스.


도대체 무얼 하면 좋을까요?

좀 가르쳐 주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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