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하세요? 나나 잘하세요!
사람은 그저 사람이니까
수수께끼 하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답 : 세계평화? 지구온난화 막기?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이거다.
타인을 변화시키기
수수께끼 둘.
그럼 세상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일은?
이건 조금 쉽다.
답 : 자신이 변화하기
어젯밤에 문자 하나를 받았다. 자기 직전이었다. 귀찮아서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보았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보냈나 싶어서였다. 그리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보지 말 걸 그랬다. 문자는 친구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지금 내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얘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동안 그이로부터 충분히 고통을 받았다. 나는 이미 그이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이는 때때로 문자를 보낸다. 그이에게서 나오는 말은 - 그게 문자든 음성이든 - 하나같이 내 감정을 폭발시킨다.
밤새 마음이 흙탕물이 되어 쿨렁거렸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나갔다. 불을 켜고 컴퓨터를 열었다. 이리저리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녀도 머릿속은 이미 그이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이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또한 화내고 또 화냈다. 마음속의 무한반복 버튼이 눌러진 것이다. 이러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벗어나기가 힘들다.
누군가에게 마음속으로 말하고 또 말하고 화내고 또 화내고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하, 이건 스스로를 갉아먹는 짓이다. 이미 이전에 많이 해봤다(내 인생에는 무한반복 버튼을 누르게 하는 특정인이 몇 있었다). 일종의 감옥이다. 이 버튼은 한번 눌러지면 다시 끄기가 아주 아주 어렵다. 밥을 먹으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오직 무한 반복되는 생각.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웃기는 게 뭔지 아나? 정작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혼자서 괴로워한다는 점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멀쩡한데 상처를 받는 사람만 지옥인 더러운 세상.
'스트레스에 그런 방식으로 대응했던 게 내 발병의 원인이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는 이 버튼을 누르지 않을 줄 알았다. 아니 눌러도 눌러지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제 그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 이런 젠장! 그게 아니었나 보다. 오늘 아침까지도 나는 버튼을 끄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산으로 갔다. 요즘 살살 등산을 시작하는 참이었다. 전에는 30분이면 갈 지점까지 이제는 1시간이 걸린다. 항암 뒤의 체력이란 게 이렇다. 저질 체력이란 말도 무색한 환자 체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연두가 남아있는 청계산은 예뻤다. 며칠이면 이 예쁜 색이 평범한 녹색으로 바뀌겠지. 벌써 연두는 많이 짙어졌다. 오늘은 처음으로 약수터까지 올라갔다. 역시 오래오래 걸려서. 산을 내려올 때까지도 버튼을 끄지 못했다. 기분은 조금 나아졌지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고, 이번 달 카드값을 입금하고, 병원의 예약 날짜를 바꾸고... 이런저런 잡다한 볼 일을 처리하고 나니 전화가 왔다. 얼마 전 유방암 카페를 통해 알게 된 환우다. 아직 얼굴은 본 적 없지만 동병상련의 우리들은 마음이 척척 통했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 나서 드라마 하나를 보았다. 옥탑방 왕세자. 집에 티브이가 없으니 재밌는 드라마가 있으면 가끔 다운로드하여 본다. 에고, 오랜만에 약수터까지 갔다 왔더니 몹시 곤비하구나~ 비몽사몽 한 시간쯤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어, 버튼이 꺼졌다! 무엇 덕분이었을까? 등산? 통화? 드라마 시청? 비몽사몽 낮잠? 그 모든 것의 덕분인 것 같았다. 예전처럼 무한반복 시스템에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결심. 게다가 열심히 몸과 입을 움직인 것. 거기에 휴식. 스스로 위로를 하자면 예전보다는 버튼의 작동시간이 많이 짧아졌다. 하루 밤낮 정도였으니. 허나 버튼은 여전히 건재했다.
아직은 나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함을 알았다. 선배 환우가 말했었지.
"우리들은 말이야, 아기처럼 아주 조심조심 다루어야 해.
이렇게 아픈 자신을 내 딸이라고 생각해봐. 어떻게 해주겠어?
온갖 거 다 보살펴 주고 아껴주겠지?
자신을 내 딸이다 생각하고 내 딸에게 해주듯이 해주어야 해."
아직은 생각만큼 내가 단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그렇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없음을 알았다. 글쎄다. 살아있는 동안 그토록 강해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 평소엔 평화롭게 지내다가도 문자 한 통에 무너지는 나를 보시게나. 강해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게야. 뭐 굳이 자신을 몰아치지 않으련다. 사람이 꼭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사람은 그저 사람이니까.
수수께끼 해결법 - 타인을 변화시키기.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누군가 변했다면 그건 그 자신의 결과다.
변화는 자기 내부에서 나온다.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혹은 주는) 사람들을 내가 변화시킬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 터.
그러니 그들은 내버려두고 나나 잘할 밖에.
"너나 잘하세요."가 아니라 실은 "나나 잘하세요."가 맞다.
수수께끼 해결법 - 자신이 변화하기
이건 가능한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오죽하면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으랴.
인생에 고난이나 전환점이 닥치면 사람은 스스로 변하려고 한다.
변하지 않으면 같은 방식의 어려움이 계속 찾아온다.
지구에 존재하는 것들은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사람이 특히 그렇다. 자꾸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게 익숙하니까.
익숙함을 벗어버리는 용기. 그게 변화다.
문제는 단 한 번에는 안 된다는 것.
일상에서 자꾸 반복하고 반복해서 완전히 내 것이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래서 일상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숙제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