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만보

회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쫓아내는 헬스장을 보셨나요?

사장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by 소율


오십이 넘도록 꾸준히 즐기는 운동은, '걷기'. 살면서 이것저것 운동이란 걸 시도해 보았다. 필라테스니 PT니 요가니 댄스니...... 걷기만큼 질리지 않는 종목은 없었다. 하기도 얼마나 쉬운가. 그저 모자 쓰고 운동화 신고 나가면 그뿐이다. 외진 동네 산 아래에, 큰 공원 옆에 사는 건 오직 걷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4월엔 춥다가 덥다가 날씨란 놈이 깨춤을 추었다. 더위도 싫어하지만 추위 역시 참지 못하는 성미. 나는 동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거나 집에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제자리 걷기를 했다. 당연히 밖에서 걷는 것보다 못하지만 암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는 주의를 주장한다.


야외 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5월이 되어서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의 여왕', 그녀의 시절이 도래했으니까요. 어제는 조금 늦게 일어났더니 벌써 해는 쨍쨍이고 더워 보였다. 갑자기 여름이 되었다. 땡볕 아래 걷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성질머리라서요. 8시 반. 나는 다시 헬스장으로 향했다.




동네의 소박한 헬스장.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해 두세 명 정도. 핸드폰의 오디오북 앱을 틀고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았다. 경사도를 0.4로 놓고 시속 4.7의 속도로 걸었다. 엄청 느린 거 나도 안다. 유방암 치료 후 '무리하지 않기'가 인생 표어가 되었다. 남들 보기엔 느리겠지만 나에겐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속도다.


한동안 푸른 풍경을 보면서 걸었다고 이젠 러닝머신이 지루하다. 그래도 5km는 채워야 한다. 조금 지났을까, 뭔가 이상했다. 실내가 더웠다? 명색이 회비 받는 헬스장인데 적어도 덥지는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도 몇 없고 에어컨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벽에 높이 걸린 선풍기를 틀었다. 목덜미를 식혀주어 조금 낫다.


잠시 후 또 더워진다. 러닝머신을 잠깐 멈추고 뒤를 올려다보았다. 선풍기가 꺼져있다! 짜증이 솟았다. 짠돌이 사장님의 소행일 확률이 높았다. 평소 들어설 때마다 남은 기간과 이름을 물어보는 통에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에어컨을 틀어주진 못할망정 선풍기조차 아껴서야 어디 회원이 늘겠습니꽈?!


청계산 약수터


대놓고 따지기도 좀스러웠다. 대신 결심했다. 장마철이 오기 전까지 무조건 밖에서 걸어야겠다고. 불면증 때문에 일찍 일어나기가 힘들다만, 늦어도 7시 반엔 일어나리라. 8시 전에 나오면 한껏 그늘진 대공원을 걸을 수 있다. 9시만 되어도 더워져서 '땡볕 기피증'이 강하게 발동한다. 혹시 늦게 일어나면 그냥 청계산 약수터라도 가야겠다. 산속은 11시 정도까진 그늘이 져서 괜찮을 것이다.



오늘은 맞춤하게 잠이 깨었다. 7시 45분, 집에서 나왔다. 햇빛은 알맞게 따사롭고 바람이 부드러웠다. 5월에만 맛볼 수 있는 명품 바람, 상큼하게 기분을 살살 녹여주는 바람이다. 내가 이걸 잊고 있었네. 삼십 년에 가깝게 서울대공원을 걸어도 질리지 않는 팔 할의 이유, 바로 이 바람 때문이었다. 장마철이 오기 전까지 실컷 누려야지.




연두와 초록이 겹겹이 섞인 풍경.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들이 어릴 적 연을 날리던 잔디밭이 보인다. 맞은편엔 한 물 갔다는 서울랜드. 그래도 봄가을엔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며칠 전 흐린 날엔 위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요즘 유행은 올블랙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호수를 끼고 한 바퀴 돌아 코끼리 열차 매표소와 스카이 리프트 타는 곳. 나는 그 뒤쪽 샛길을 통해 산길을 넘어간다. 한동안 떨어졌던 체력이 붙는 게 느껴졌다. 동네에서 서울대공원으로 통하는 길은 오르막 골목을 지나 또 오르막 산길을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숨차던 걸음이 한결 편해졌다. 역시 밖에서 걷는 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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