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을 절대 하지 못하는 여자. 바로 나. 새벽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몇 번이나 고백했듯 불면증 약을 먹는 자로서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요즘 약 줄이기에 재도전 중. 매일 밤 10시가 되면 과도를 꺼내든다. 자그마한 노란색 알약을 반으로 가르기 위해서. 다섯 개 중 하나부터 시작했다. 딱 소리와 함께 약이 잘라진다. 남은 반 개는 빈 약통에 넣었다가 다음날 먹는다.
늦어도 7시 반에는 일어나는 게 목표. 물론 알람을 맞춰 놓았다. 일어나서 아무 생각 안 하고 나가기가 두 번째 목표. 미세먼지가 심한가, 쌀쌀한가, 비가 오는가, 해가 너무 쨍쨍한가, 바람은 부는가... 발목을 잡는 핑곗거리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전날 밤에 약 자르듯 생각을 떨쳐낸다. 무조건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과천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아침 걷기로 서울대공원을 한 바퀴 도는 건 오래된 루틴이었다. 엄청나게 성실하진 못해서 한여름 한겨울엔 사실상 안(못) 나간다. 세월이 지날수록 날씨가 너무 덥고 너무 추워졌다. 그럴 땐 헬스장이 대안이다. 헬스장도 안 갈 땐 집에서 드라마 보며 제자리 걷기를 한다. 그것도 운동이냐고 무시하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산길을 넘어 서울대공원에 도착하면 일하는 직원들이 보인다. 손님들이 모여들기 전에 쓰레기봉투를 치우고 바닥을 쓸고 가지치기를 하거나 풀을 깎는다. 이른 아침에만 만나는 풍경이다. 일반 방문객들은 별로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뒤에서 궂은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번듯하고 깨끗한 모습이 유지된다. 당연한 이치. 어떤 장소가 평범하게 문제없이 유지된다면 누군가의 손길이 잔뜩 들어갔단 소리다.
요즘은 8시 전에만 나가면 아직 시원한 편이다. 기온이 20도 이하여서 걷기엔 안성맞춤.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주면 금상첨화. 같은 곳을 날마다 걷는 일은 언뜻 지겨울 것 같지만. 반면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안겨준다. 계절마다 변하는 경치를 구경하기에 지루하지 않다. 벚꽃이 피었다가 곧 지고 새 잎이 아기손처럼 벌어졌다가 금세 무성해졌다.
짙어가는 나무 그림자 속을 걸으면 어느덧 마음이 녹녹해진다. 햇살이 비치는 쪽은 연두로 빛나고 그늘은 어두운 초록이 된다. 오묘한 색의 대비에 나는 매번 감탄한다. 오늘도 반했다. 걷다 말고 어김없이 사진을 찍는다.
9시 전후론 등산복을 입은 젊은 노인들이 오간다. 산림욕장이나 청계산을 오르는 등산객이다. 그러나 오월은 유딩부터 고딩까지 아이들이 모여드는 계절. 소풍, 걷기 모임, (짧은) 마라톤 등 각종 행사가 벌어진다. 솔직히 나이 든 이들이 바글대는 것보다 젊은 아이들이 북적대는 모습이 한결 보기 좋다. (나도 늙음 쪽에 가까운 입장이면서 말이다)
절로 엄마 미소를 짓게 한다. 그저 젊음 하나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걸. 노란 운동복을 입은 원아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은 또 어떤가! 영락없는 병아리들이다. 어미닭 아니 선생님을 졸졸 따라가는 풍경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이 먹어갈수록 어린아이들이 이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흐린 날 보단 맑은 날에 걷는 맛이 살아있다. 그늘도 선명하고 바람도 시원하다. 더불어 사진도 잘 나오고. 호수를 중심으로 돌아 리프트 매표소까지 와서 뒷길로 접어든다. 거의 다 걸은 거나 마찬가지다. 뒷길을 조금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내가 사는 동네로 넘어간다. 들고 간 물 한 병은 이미 비었다. 겨드랑이는 젖었고 이마에도 땀이 축축하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어재끼고 욕실로 뛰어든다. 샤워기 아래 서있을 때의 개운함이란. 이 맛에 아침 걷기를 하는 거지. 다음은 아침밥을 간단히 차려 먹을 시간. 혼밥이다. 곡물빵 한쪽과 과일, 계란프라이 정도. 느긋하게 에티오피아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다. 식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두 번째로 좋아하는 순간이다.
출근하는 사람들(남편과 아들)은 이미 나갔다. 아침밥은 각자 알아서 먹는 게 암묵적인 규칙. 평소 남편은 믹스커피와 떡, 과일 등을 챙겨 먹는다. 아들은 아침을 먹지 않는 스타일. 재택근무를 하는 날엔 아점으로 대신한다.
미라클 모닝은 못하지만 나의 '서울대공원 굿모닝' 어때요? 장마와 더위가 오기 전에 아름다운 순간을 욕심껏 즐길 테다! 이게 뭐라고 결심까지 하나? 흐흐흐. 인생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편이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은 결코 작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