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만보

서울대공원을 걷다가 조식 먹은 사연

최상의 걷기 법

by 소율


걸은 지 오래되었다. 이번 주엔 강의가 몰리고 병원 진료도 겹쳤다. 무려 6일 만에 나갔다. 며칠 비가 와서 습했지만 기온은 낮았다. 평소보다 두어 시간 늦게 출발했는데 덥지 않았다. 산길에 다다르자 잠깐 망설였다. 등산로 약수터 쪽으로 올라갈까, 서울대공원으로 내려갈까. 결정을 지어준 건 다름 아닌 습도.


숲길의 공기는 무겁고 답답했다. 습기가 온몸을 적시는 것 같았다. 장마철 예고편인가? 엣다 오늘은 대공원이다! 구름이 햇빛을 가려서 제법 시원하고요. 그쪽이 낫겠다. 산길을 가로질러 내려가 서울대공원 뒷길. 어라 동물원둘레길 입구가 열려있다. 9시가 넘었구나. 나는 보통 8시쯤 걷기에 그 길로는 갈 수 없었다(9시부터 개방함). 늦게 나오는 것도 장점도 있네.



그러나 나는 호수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람을 쐬고 싶었다. 호수 주변엔 늘 바람이 부니까. 며칠 못 걸었다고 신선한 공기가 매우 고팠다. 장미원 울타리의 장미와 명자꽃은 진즉에 졌다. 대신 반대편의 작은 화단이 시야로 달려든다. 알록달록 갖가지 꽃들이 화려하다.



예전엔 큰 공원은 물론이고 거리의 조경이 촌스럽다고나 할까, 진한 단색의 꽃들만 잔뜩 심어놓았다. 요즘은 색깔도 종류도 다른 꽃들이 조화롭게 피어있다. 사이사이 초록색 풀도 섞여 멋스럽다. 나 같은 문외한이 눈치챌 정도로 조경의 수준이 높아졌다. 덕분에 걷는 맛이 몇 배 살아난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럴 수가, 날씨가 아직까지 시원해! 내친김에 더 걸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호수 둘레를 한 번 더 돌았다. 슬슬 출출해진다. 평소라면 이때쯤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다. 서울랜드 입구에 카페베네가 문을 열었다. 아하 늦게 나온 덕분에 카페에도 갈 수 있겠군. 오랜만에 여유를 부려보세.


카페 안에 손님은 몇 없었다. 아마 오후가 되어야 붐빌 것이다. 나는 햄 치즈 토스트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장마철 직전에 얻어걸린 서늘한 날씨가 복덩이다. 벌써 11시인데 기온은 23도 밖에 되지 않는다. 늦게 나와 걸으며 조식까지 챙길 수 있다니. 카페 창밖으로 탁 트인 대공원의 전경이 들어온다. 줄지어 선 연두색 나무들이 초록으로 변해가는 모습. 흐린 하늘이어도 눈은 시원하다.


따끈한 토스트는 입에 맞았다. 얼음을 반만 넣어달라고 부탁한 아메리카노. 여름에 뜨거운 커피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아이스커피는 너무 차다. 나는 살짝 녹은 얼음마저 포크로 건져내었다. 적당히 시원한 커피로 완성. 모든 게 완벽해.



다시 걸을 시간. 아까보다 해가 조금 나왔다. 습기가 적어졌다. 먹고 나서 바로 걷는 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습관이다. 소화력이 약한 나에겐 최상의 걷기법이거든요. 집에 돌아와 축축하게 젖은 옷을 벗었다. 얼른 샤워기 앞에서 물 세례를 맞는다. 이 맛에 땀을 흘리는 거지! 스마트밴드엔 만 보가 찍혔다. 오늘도 좋은 산책이었어. 음하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월의 서울대공원, 해질녘 동화나라에 반했다